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뒤 단상에 올라 손을 올리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싸움은 끝났다. 드디어 여러분과 함께 헌법 개정에 임하고 싶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3선에 성공했다. 의원내각제 국가 일본에선 집권당 총재가 총리가 되기 때문에 아베 총리는 이번 승리로 3년 뒤인 2021년 9월까지 일본을 이끌게 됐다. 그때까지 집권하면 총 재임 기간은 8년9개월로 늘어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가 된다.
아베 총리는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진행된 투표에서 전체 810표(의원 405표, 당원 405표) 중 553표(68.3%)를 얻어 254표에 그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에게 크게 이겼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헌법 개정안을 다음 국회에 제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왔다. 이번 선거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결과가 나온 이상 이런 큰 방침을 향해서 (개헌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의 개정 의지를 거듭 강조해왔다. 지난달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선 “언제까지고 (개헌) 논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가을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구상하는 개헌안은 현행 헌법의 핵심인 ‘전쟁 포기’와 ‘교전권 부인’을 담은 제9조는 그대로 두고 ‘제9조의2’를 신설해 자위대 설치 근거를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엔 “육해공군과 그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 자위대 보유가 위헌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시민사회는 당장 평화헌법의 핵심을 훼손하기는 어려우니 우회로를 통해 향후 본격적 개헌을 위한 디딤돌을 놓으려는 꼼수라 보고 있다.
아베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인 아소 다로 부총리의 ‘아소파’는 개헌 일정표까지 제시한 상태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아베 총리에게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전까지 국민투표를 하자는 정책 제안을 전달했다. 올 가을에 개헌안을 국회 헌법심사회에 제출하고, 내년 여름까지 국회 통과와 국민투표를 마무리한다는 안이다. 개헌을 위해선 중의원과 참의원의 재적 인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국민투표에서 참여 유권자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아사히신문>의 이달 초 여론조사에서는 49%가 가을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에 반대(찬성 32%)했다. 총재 선거에서 무엇이 주요 쟁점이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경제 정책(23%)과 사회보장 정책(26%)을 많이 꼽았다. 개헌을 고른 이들은 8%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일본 언론들이 압승의 기준으로 꼽은 70% 이상 득표에 실패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선전’의 기준인 200표를 훌쩍 뛰어넘은 254표를 확보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특히 당원들한테는 44.7%(181표)를 얻어 아베 총리와 호각세를 보였다. 의원 투표에선 아베 총리가 절대 우세(80%)를 보였지만 지방 당원들 민심은 다른 셈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대중적 인기가 높아 차차기 총리로 꼽히는 신지로 의원이 이시바 전 간사장을 지지한 점도 눈에 띈다.
개헌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인 ‘허용하지 마 헌법 개악’의 다카다 겐 사무국장은 최근 <한겨레>에 “결전의 시기가 다가온다. 개헌 반대 3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 집 한 집 방문해 서명을 받는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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