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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이지메 당하던 혼혈 소년, 오키나와 운명을 짊어지다

등록 2018-10-01 17:03수정 2018-10-01 21:09

오키나와 지사 당선자 다마키 데니
주일 미군이 아버지이지만 얼굴도 몰라
혼혈이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기도
라디오 DJ로 유명·하드록 좋아해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할 것”
30일 열린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 승리가 확실시된다고 발표되자,오키나와 전통 춤인 ‘가챠시’를 추고 있다. 나하/지지 연합뉴스
30일 열린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 승리가 확실시된다고 발표되자,오키나와 전통 춤인 ‘가챠시’를 추고 있다. 나하/지지 연합뉴스
‘그’는 주일미군과 오키나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프’(half·일본에서 혼혈인을 부르는 명칭)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했다. 젊은 시절엔 미군을 상대로 밴드 활동을 했다. 우치나구치(오키나와어)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로 유명해졌다. ‘오키나와의 혼’으로 불린 오나가 다케시 전임 지사는 그를 “오키나와 전후사를 등에 짊어진 정치가”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의 이름은 다마키 데니(59). 30일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55.1%를 득표해 승리했다. 일본 언론들은 그의 승리가 지난달 20일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해 2021년 9월까지 임기를 확보한 아베 신조 총리의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마키를 승리로 이끈 것은 더 이상 미군기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오키나와인들의 단결된 마음이었다. 이는 지난 8월 별세할 때까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줄기차게 반대한 오나가 전 지사의 뜻이기도 했다. 다마키 당선자는 1일 “오나가 전 지사의 뜻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다는 현민의 마음이 표로 연결됐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 중단, 후텐마 기지 폐쇄와 반환을 미-일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다마키 당선자의 인생은 굴곡의 전후 오키나와 역사의 축소판이라 부를 수 있다. 그는 오키나와가 아직 미국의 점령지였던 1959년 섬의 중부 우루마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주일미군이었다는 것 외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어머니는 다마키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갈 생각으로 뱃속에 있던 아이 이름을 ‘데니스’라 지었다. 그러나 모자는 섬에 남았다. 다마키는 지난해 한 인터넷 텔레비전 정치 프로그램에서 “어머니가 주위의 설득에 따라 남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가 철이 들기 전에 아버지의 사진과 흔적을 모두 없앴다. 이름도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식인 ‘야스히로’로 개명했다.

30일 오키나와현 지사에 당선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이 전기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30일 오키나와현 지사에 당선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이 전기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하지만 백인 같은 외모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 8월 주간지 <아에라> 인터뷰에서 “불량한 선배들에게 여러 이지메(괴롭힘)를 당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열 손가락 길이는 모두 같지 않다”(사람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는 뜻)는 오키나와 속담으로 그를 위로했다.

그는 도쿄 전문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뒤 섬으로 돌아왔다. 20살 때부터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30살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와 디제이를 맡았다. 오키나와어로 진행한 라디오 방송은 오키나와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42살에 오키나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8월8일 오나가 전 지사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의 인생에 또다른 전환점이 됐다. 오나가 전 지사는 생전에 다마키를 자신의 후계자 가운데 하나로 점찍었다. 다마키는 고민 끝에 8월29일 헤노코 기지 반대로 똘똘 뭉친 오키나와인들의 뜻을 이어받아 선거에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다.

상대는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전 기노완 시장 사키마 아쓰시(54·득표율 43.9%)는 선거에서 ‘6전 무패’를 자랑하는 오카나와 보수의 ‘에이스’다. 아베 정권은 사키마를 당선시킨 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려고 총력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쓰라린 패배를 맛본 아베 총리는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물론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오키나와현은 헤노코 해안 매립 공사 승인을 8월31일 철회했지만, 중앙정부는 곧 취소 소송을 낼 예정이다. 보수적인 일본 사법부는 이런 경우 꼭 중앙정부 손을 들어왔다. 하지만 다마키는 낙천적인 편이다. 그는 지난 8월 한 인터뷰에서 “내겐 미국의 피가 절반 정도 흐른다. 내 말의 반 정도는 (미국이) 들어줄 것이다. 나머지 반은 일본 정부가 듣게 하겠다”고 말했다. 당선이 확실시된 30일 밤, 다마키는 오키나와 전통 춤 ‘가챠시’를 덩실덩실 췄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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