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12월23일 아키히토 당시 일왕(왼쪽 셋째)의 81번째 생일을 맞아 왕실 일가가 도쿄 왕궁의 발코니에서 축하 인파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사코 현 왕비, 나루히토 일왕, 아키히토 상왕, 미치코 상왕비, 후미히토 왕세제, 기코 왕세제비, 마코 공주. 도쿄/AP 연합뉴스
30대 이하 왕족 남성은 1명뿐 일본 왕실의 위기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마사코 왕비다.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왕실에 들어와 적응장애를 앓고, 2002년 이후 18년째 국민들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만세일계’(일본 왕실의 혈통이 단절된 적이 없다는 주장)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해서다. 마사코의 결혼 생활 27년을 돌이켜 보면, 시대 변화와 동떨어진 일본 왕실의 민낯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마사코 왕비는 23살이던 1986년 외교관이 됐다. 외교관 아버지 탓에 23년의 절반은 모스크바와 뉴욕 등 외국에서 살았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마사코는 미국 금융권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지만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을 위해 일하고 싶다”던 20대 마사코는 방송 인터뷰에서 “외교관이라 해외 근무가 많지만 가정과 일을 양립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보였다. 마사코는 1986년 말, 외교사절 행사에서 통역을 하다가 나루히토 왕세자를 처음 만났다. 나루히토의 긴 구애를 받아들여 1993년 6월 ‘왕실 외교’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입은 12겹이나 되는 무게 10㎏의 실크 기모노 ‘주니히토에’처럼 마사코의 왕실 생활은 겉보기에 화려했다. 그러나 ‘임신부터’라는 거대한 숙명 앞에 억압과 속박의 연속이었다. 미디어에선 불임 기사가 쏟아졌고, 마사코는 임신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해외순방도 갈 수 없게 됐다. 결혼 8년6개월 만인 2001년 12월, 마사코는 한 번의 유산을 거쳐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출산 15분 만에 왕실 출입기자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왕세자비가 공주를 낳았다.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하다.” 당시 기자실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했다고 한다.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코 공주가 태어나고 일본 왕실은 더 강하게 위기를 말했다. 둘째, 셋째를 기대하기에는 왕세자 부부의 나이가 많았고, 마사코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왕실에서 나루히토보다 나이가 어린 남성은 5살 아래 동생 후미히토 딱 한명이었다. 마사코는 2003년 12월 대상포진으로 쓰러져 입원했고, 2004년 7월엔 적응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에 들어갔다. 2006년 41년 만에 남성 왕족인 히사히토(후미히토의 아들)가 태어나면서 왕실은 왕위 계승 문제에 있어 한숨 돌리게 됐다. 건강을 회복 중인 마사코는 지난해 10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을 치르고 외교사절도 만나고 있다. 지난 9일엔 생일을 맞아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같은 날 궁내청 의사단은 “아직 컨디션에 고저가 있다”며 계속 치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왕실 성차별 개혁 여론 높지만, 극우세력 의식한 스가 ‘난색’ 왕족이 소멸할 위험에 처하면서 일본 정부도 본격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여성·모계 일왕을 인정할 것인지와 결혼한 여성 왕족의 신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결국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의 변화를 왕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9일 민영방송 <티브이(TV)도쿄> 인터뷰에서 “부계 혈통이 예로부터 예외 없이 유지돼온 무게감에 입각해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돌려서 말했지만 사실상 여성·모계 일왕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공주가 결혼을 하더라도 특별직 공무원 자격으로 왕실의 공무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등 최소한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70% 이상이 여성·모계 일왕에 대해 찬성하는데도 정부 여당이 이를 외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민당의 지지 기반인 보수 세력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 의원들은 최근 스가 총리를 만나 “부계를 통한 남성의 왕위 계승을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극우세력은 여성·모계 일왕이 인정되면 왕실의 전통과 금기가 완화될 것이고, 결국 ‘천황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 일본 왕실의 진짜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보루 세이이치로 전 외무성 간부는 <아사히신문> 기고에서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라며 “이를 계승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많은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간노 도모코 변호사는 이 신문 웹진 ‘론자’ 인터뷰에서 “아이코 공주는 어머니인 마사코 왕비가 비판받는 것은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왕실에 이런 가치관이 있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진다. 정부가 국민들의 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유럽 왕실들 ‘첫째가 왕위계승’ 대세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세계 28개(영연방 1개로 하고 바티칸 제외) 나라에서 왕실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 10개국에 왕실이 존재하는데,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남녀를 불문하고 첫째가 왕위를 이어가는 제도가 자리 잡는 분위기다.
영국은 2013년 성별에 관계없이 국왕의 첫번째 자녀가 왕위 계승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영국 왕실은 수백년 동안 국왕에게 아들이나 친손자가 없을 경우만 딸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1세, 현재 엘리자베스 2세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 정부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남녀평등이 당연한 원칙이 됐다”며 왕위 계승 관련 법을 개정했다.
스웨덴(1980년)·네덜란드(1983년)·노르웨이(1990년)·벨기에(1991년)·덴마크(2009년) 등도 1980년 이후 ‘맏이 우선’으로 왕위 계승 제도를 바꿨다. 덴마크는 여왕이 재위하고 있고, 스웨덴·네덜란드·벨기에는 공주가 왕위 계승 서열 1위다. 스페인은 부계·남성만 왕위를 계승할 수 있으나, 직계 남성이 없을 경우엔 여왕을 인정한다.
중동 이슬람 국가나 아프리카처럼 남녀차별이 뿌리박힌 나라를 제외하면, 일본 이외의 대부분 국가에서 여성 국왕을 인정한다. 아시아 나라 중 타이(태국)도 1974년 헌법 개정으로 여성의 왕위 계승이 가능해졌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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