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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모른 척한 미국?

등록 2012-04-03 15:30

»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쪽의 위성발사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궁금한 것은, 그럼에도 북-미가 ‘2·29 합의’를 도출해낸 이유다. 사진공동취재단
»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쪽의 위성발사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궁금한 것은, 그럼에도 북-미가 ‘2·29 합의’를 도출해낸 이유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21
[초점] 위성발사 계획 미국에 사전 통보한 북한과 이를 알고도 식량지원 합의한 미국… 핵과 함께 발사체 문제도 협상 과제 돼

각본이라도 있었던 걸까? 연출에 제법 속도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도처에 의문부호만 가득하다. 복기를 해보면, 지난 3월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위성발사 계획 발표가 몰고 온 혼란스러운 동북아 정세는 온통 애매한 것 투성이다. 사전에 잘 짜인 시나리오가 있었거나, 상대방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발적 착오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찌됐든 지금으로선 북한이 성큼 앞장서 나아가고, 미국은 마지못해 그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위성발사 계획 김정일 생전에 결정

동북아 외교·안보 문제를 다루는 미국 노틸러스연구소의 스콧 브루스 연구원은 최근 흥미로운 분석 자료를 내놨다. 2010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년 동안 북쪽 <조선중앙통신>이 위성발사·우주개발 프로그램 관련 기사를 보도한 횟수를 집계한 것이다. 자료를 보면 2010년 12월과 지난해 1월까지 단 1건도 없던 관련 보도가 지난해 2월에 1건 나오기 시작하더니, △3월 2건 △4월 5건 △7월 9건 △8월 12건으로 지속적으로 많아졌다. 9월과 10월에도 각각 8건과 9건씩 보도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을 거두기 전달인 지난해 11월엔 15건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무슨 뜻일까?

“(김 위원장이 숨지기 나흘 전인) 지난해 12월15일 북한 관계자에게서 위성발사 계획에 대해 처음 전해들었다.” 지난 3월21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에번스 리비어는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위성발사 계획은 김 위원장 생전에 이미 결정돼 있었다는 뜻이다. 브루킹스연구원의 분석 자료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읽어낼 만하다.

리비어는 같은 글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북의 위성발사 계획을) 알고 있었으며, (북-미 접촉 과정에서) 이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도 주장했다. 이 또한 사실로 확인됐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3월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리비어의 주장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해 8월부터 모두 3차례 진행된 북-미 양자접촉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며 “다만 (위성발사) 관련 내용이 거론될 때마다, 탄도미사일 기술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는 점을 북한 쪽에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북쪽이 북-미 접촉에서 위성발사 계획에 대해 언급했음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미 국무부가 북쪽의 위성발사 계획 발표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것은 워싱턴 현지시각으로 3월16일 새벽 4시20분께였다. 이례적이랄 수밖에 없는 시간에, 신속하게 대응한 이유가 있었다. 북쪽이 위성발사 계획을 미국 쪽에 사전 통보했기 때문이다. 뉼런드 대변인은 그날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3월15일 오후 늦게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이 위성발사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점을 통보해왔다”며 “상황의 위중함을 확실히 하기 위해 (새벽 시간에) 서둘러 성명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 이행 조처 밟고 있는 북한

위성발사 계획 발표 당일, 북쪽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는 3월16일 대변인 담화에서 위성발사 시점을 “4월12일부터 16일 사이”로, 발사 장소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으로 각각 명기했다. 또 “위성발사 과정에 산생(생산)되는 운반 로케트 잔해물들이 주변 국가들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비행궤도를 안전하게 설정했다”고도 강조했다.

이튿날인 3월1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구 관측위성 ‘광명성3호’를 발사하기 위한 준비사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해당 기관들에서는 국제적 규정과 절차에 따라 국제민용항공기구와 국제해사기구·국제전기통신동맹 등에 필요한 자료들을 통보했다”고 공표했다. 북쪽은 이어 “다른 나라의 권위 있는 우주과학기술 부문 전문가들과 기자들을 초청해 서해위성발사장과 위성관제종합지휘소 등을 참관시키고,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3호’의 발사 실황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법이 정한 위성발사 절차를 준수하고 있음을 강조한 게다.

미국 쪽에서 “위성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2·29 합의 위반”이란 비판이 이어지자, <조선중앙통신>은 3월19일 다시 논평을 내어 “실용위성 발사와 장거리미사일 발사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다음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우리는 이미 결실 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핵시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활동을 임시 중지하고, 우라늄 농축활동 임시 중지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공개했다. ‘2·29 합의’에 따른 이행 조처를 충실히 밟고 있음을 강조한 것인데, 미 국무부는 북쪽의 발표가 나온 뒤에야 “IAEA를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리해보자.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생존해 있던 지난해부터 위성발사를 계획해왔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국과 접촉을 재개한 뒤 이어진 세 차례의 북-미 양자접촉 과정에서 이런 방침을 미국 쪽에 통보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지난 2월29일 핵·미사일 활동 동결과 IAEA 사찰단 방북을 조건으로 24만t 규모의 영양(식량)지원을 하기로 북쪽과 합의했다. 북쪽의 위성발사 계획 발표 뒤 미국은 2·29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하지만, 북쪽은 합의에 따른 이행 조처를 밟아가고 있다. 의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북-미가 2·29 합의를 발표한 이유는 뭘까?

김창수 사단법인 통일맞이 기획위원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부터 북-미 대화에 적극 나선 것은 ‘상황관리’ 성격이 강했다”며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쪽의 도발적인 행동을 막아내는 선에서 상황을 봉합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에도 ‘대화의 모멘텀’ 유지를 위해, 미국이 북쪽 위성발사 계획의 중요성을 애써 무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다. 김 위원은 “반면 위성발사 계획에 대한 미국의 우려에 대해 북쪽이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런 경우라면, 북으로선 향후 대미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성’이란 자산을 내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공은 미국 쪽으로 넘어갔다

어찌됐건, ‘판’은 커지게 됐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위성발사 계획 발표를 통해 북쪽은 대미 협상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며 “이제 북-미 협상의 테이블에는 핵 문제뿐 아니라, 그 운반수단(발사체)인 미사일 문제까지 올려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상황관리적 접근이 더 이상 통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 만큼, 이제 ‘공’은 미국 쪽으로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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