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920호
[세계]구제금융 조건 낮추려 전력·공항·항만 민영화는 물론 복권사업 정부 지분까지 팔기에 나선 정부
급진좌파연합 등은 집권하면 국유자산 재국유화 경고하는 가운데 노동자 저항에 성패 달려 7월27일 개막되는 2012년 런던 여름 올림픽에 출전할 그리스 선수단 구성이 마무리됐다. 그리스 ‘헬레닉올림픽위원회’는 7월12일 자료를 내어 “남자 선수 66명, 여자 선수 39명씩 모두 105명의 선수가 런던올림픽 무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그리스 선수단은 남자 선수 84명, 여자 선수 72명 등 모두 156명이었다. 경제위기가 올림픽 발상지를 얼어붙게 만든 게다. 2010년 계획 세웠지만 확보 자금 18억 유로 “민영화가 최우선 과제다. 구제금융 조건 완화를 위한 협상은 그다음이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 7월6일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막대한 빚을 제때 갚으려면 국유재산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다. 전날인 7월5일부터 7월8일까지 사흘 동안 그리스 의회는 사마라스 총리 정부의 새 정책 방향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7월8일엔 이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17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집권연정에 참여한 신민주·사회·민주좌파 등 3당 소속 의원 수와 일치한다. 민영화는 지난 3월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그리스 정부에 1300억유로 규모의 2차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하며 내건 핵심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다. 당시 트로이카 쪽은 그리스 정부에 국유자산 매각으로 500억유로 규모의 자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1차로 2015년까지 190억유로의 자금을 조달하고, 이후 10년 동안 나머지 310억유로를 확보하라는 게다. 애초 그리스 정부는 2010년 일찌감치 민영화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까지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18억유로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유자산 매각을 통해 단 1유로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침체와 사회적 위기를 더욱 심화하는 긴축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재무장관은 지난 7월7일 의회에 출석해 ‘민영화의 논리’를 이렇게 강조했다. 오는 8월 만기가 도래하는 그리스 국채만도 32억유로 규모다. 그 위기를 넘긴 뒤에야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재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7월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에서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7월24일엔 트로이카 실사단의 아테네 방문이 예정돼 있다. <로이터통신>은 7월9일 “유로그룹 내부에선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 완화 문제는 트로이카의 현지 조사가 마무리된 뒤인 9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 정부는 ‘돈 구하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은 7월8일 “그리스 정부가 민영화를 촉진하려고 국유자산 매각대금으로 자국이 발행한 국채를 되돌려받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영화는 이미 시작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7월9일 “그리스 정부가 노후한 에어버스 A340-300 기종 항공기 4대를 4천만유로에 매각하기로 했다”며 “구매자는 미국계 항공기 리스업체 아폴로항공그룹으로, 스투르나라스 재무장관이 매매계약서에 직접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들 항공기는 2009년 10월 국영 항공사인 올림픽항공이 민영화된 이후 지금껏 최소한의 유지·보수만 거친 채 아테네국제공항 활주로에 방치돼왔단다. 이를 두고 <파이낸션타임스>는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며 “그리스 정부가 2010년 발표한 민영화 정책 재추진에 시동을 건 셈”이라고 평가했다.
거대 다국적 금융자본 매각에 개입
현재까지 그리스 정부가 밝힌 민영화 대상은 모두 28개 국유기업이다. 상하수도와 전력·가스·통신사를 비롯해, 공항·항만·철도 등 인프라 전반이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전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물산이 들어오는 곳”이라 표현했던 피레우스 항구도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그리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테살로니키 항구도 마찬가지다. 국영통신사(OTE)와 전력회사(PPC)·철도회사(OSE)·가스회사(DEPA)는 물론 경마장 운영권과 스포츠베팅·로또 전문업체의 정부 보유 지분까지 매물로 나왔다.
이뿐이 아니다. 그리스 영자지 <카시메리니>는 7월8일 인터넷판에서 “국제방송센터와 일부 지역의 공항운영권도 매각 대상”이라며 “(고급 휴양지인) 로데스섬의 아판두 골프장과 코르푸섬의 카시오피 해변 등 상당수 국유지도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 정부가 지분의 34%를 보유하고 있는 우체국은행 등도 매각 대상으로 알려졌다. 민영화를 전담하려고 설립된 ‘헬레닉자산개발기금’(TAIPED)의 자료를 보면, 최근까지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만 모두 6건에 이른단다.
그리스의 국유자산 매각에는 이미 거대 다국적 금융자본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해 6월5일치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스포츠 베팅업체인 OPAP는 도이체방크가, 복권사업은 크레디트스위스가, 철도사업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가 각각 매각 자문을 해주고 있다”며 “이 밖에 아네테국제공항 리스와 연기금 자산운용 등과 관련해서도 로스차일드·바클레이스·BNP파리바 등 외국계 금융자본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급속한 민영화 추진에 역풍이 없을 수 없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유자산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지는 건 당연하다. 원내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쪽에선 이미 “이대로 민영화를 추진하면 장외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시리자 쪽은 그리스가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때까지 대외채무 지불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마라스 총리 정부의 민영화 정책은 한마디로 부동산 업자처럼 전국에 ‘팝니다’란 입간판을 세워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지난 7월7일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차기 총선에서 시리자가 집권하면, 매각했던 국유자산을 재국유화할 것”이라며 “위기를 악용해 헐값에 그리스 국민의 자산에 손댄 세력은 투자자금을 모두 잃는 것은 물론 사법적 단죄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영화 드라이브 이미 실패한 경험
우울한 소식은 계속된다. <로이터통신>은 7월12일 그리스 통계청의 자료를 따 “지난 4월 말 현재 그리스 공식 실업률이 유로존 17개국 평균치의 2배가 넘는 22.5%까지 치솟았다”며 “특히 25살 이하 청년층 실업률은 이미 50%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사상 최악의 실업률 속에 민영화까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고용불안’에 대한 노동자들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그리스 정부의 민영화 드라이브가 실패하고 연정마저 붕괴한 것도, 결국 공공부문노조(ADEDY)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 때문이었다. 이번엔 다를까? 사마라스 총리 정부의 운명이 거기에 달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급진좌파연합 등은 집권하면 국유자산 재국유화 경고하는 가운데 노동자 저항에 성패 달려 7월27일 개막되는 2012년 런던 여름 올림픽에 출전할 그리스 선수단 구성이 마무리됐다. 그리스 ‘헬레닉올림픽위원회’는 7월12일 자료를 내어 “남자 선수 66명, 여자 선수 39명씩 모두 105명의 선수가 런던올림픽 무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그리스 선수단은 남자 선수 84명, 여자 선수 72명 등 모두 156명이었다. 경제위기가 올림픽 발상지를 얼어붙게 만든 게다. 2010년 계획 세웠지만 확보 자금 18억 유로 “민영화가 최우선 과제다. 구제금융 조건 완화를 위한 협상은 그다음이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 7월6일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막대한 빚을 제때 갚으려면 국유재산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다. 전날인 7월5일부터 7월8일까지 사흘 동안 그리스 의회는 사마라스 총리 정부의 새 정책 방향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7월8일엔 이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17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집권연정에 참여한 신민주·사회·민주좌파 등 3당 소속 의원 수와 일치한다. 민영화는 지난 3월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그리스 정부에 1300억유로 규모의 2차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하며 내건 핵심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다. 당시 트로이카 쪽은 그리스 정부에 국유자산 매각으로 500억유로 규모의 자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1차로 2015년까지 190억유로의 자금을 조달하고, 이후 10년 동안 나머지 310억유로를 확보하라는 게다. 애초 그리스 정부는 2010년 일찌감치 민영화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까지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18억유로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유자산 매각을 통해 단 1유로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침체와 사회적 위기를 더욱 심화하는 긴축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재무장관은 지난 7월7일 의회에 출석해 ‘민영화의 논리’를 이렇게 강조했다. 오는 8월 만기가 도래하는 그리스 국채만도 32억유로 규모다. 그 위기를 넘긴 뒤에야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재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7월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에서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7월24일엔 트로이카 실사단의 아테네 방문이 예정돼 있다. <로이터통신>은 7월9일 “유로그룹 내부에선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 완화 문제는 트로이카의 현지 조사가 마무리된 뒤인 9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 정부는 ‘돈 구하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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