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주역 민동석씨를 외교부 차관으로 불러들인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오기인사란 비판이 일었습니다. 쇠고기 협상의 결과에 성난 국민들한테 대통령이 직접 고개를 숙임으로써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오기가 작동한 인사라는 지적이었습니다.그런데 오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부자 감세 철회 검토론’도 청와대 쪽의 오기에 이야기가 쑥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는 한 인터뷰에서 ‘감세는 대통령 공약사항이어서 특정 정치인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감세 철회는 성장을 목표로 한 MB노믹스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라는 게 청와대 쪽의 인식인 듯합니다. 청와대의 오기에 한나라당이 내세운 ‘개혁적 중도보수 노선’도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습니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경남도 간의 충돌도 오기의 사례입니다. 공사를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환경파괴 등을 고려해 규모를 줄여서 하거나 협의회를 만들어 절충점을 찾아보자는 게 경남도의 목소리이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안합니다. 대신 낙동강 사업권을 강제회수하겠다며 이달 말까지만 시간을 줄 테니 알아서 하라며 을러대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가 큰맘 먹고 벌이는 국책사업에 일개 지방 정부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끼어드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지난 봄 4대강 사업 반대여론이 거셀 때 강조했던 국민과의 소통, 대화는 온데간데없고 오기만이 가득한 형국입니다.
대체 오기가 뭐기에….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잘난 체하며 방자한 기운’이라고 풀이돼 있더군요.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면 누가 피해를 볼까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남북관계에 보다 큰 틀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은 물건너간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놓은 답변이어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때마침 30일부터 금강산에서는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뤄집니다. 13개월 만의 올 첫 이산가족 상봉인데다 남북경색 국면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국정원장의 발언을 통해 남북관계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한 만큼,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에서는 오기를 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곽노필 편집국 부국장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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