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여론이 매우 악화되어 청와대도 공직 후보자를 포기해야겠다는 판단을 할 때 여당이 그 총대를 메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먼저 여당에서 대통령 인사를 정면으로 문제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매우 당혹스러울 겁니다. 한나라당 인사들이 강하게 부인하지만, 이번 일을 레임덕의 본격화로 해석하는 것도 이 대통령으로선 아픈 대목입니다.
‘뭐가 레임덕이냐, 어떤 기준에 들면 레임덕으로 봐야 하느냐.’ 이에 대한 명문화된 기준은 없지만, 대체로 정치학자들 사이에선 ‘집권당이 대통령의 주요 정책에 반기를 들 때’ 그걸 레임덕의 분명한 신호로 해석합니다. 차기 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집권당 의원들이 대통령과 함께 가기보다는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필요하다면 대통령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바로 레임덕이라는 겁니다. 오늘 한나라당이 헌법기관장인 감사원장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건 이런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출입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모든 대통령은 인사를 쉽게 바꾸려 하질 않습니다. 인사를 번복하는 건 자신의 첫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시인하는 건데, 이걸 하기가 싫은 겁니다. 밖에서 보면 당연히 저 장관을 바꿔야 할 텐데 청와대가 미적거리는 걸로 보이는 건, 정치적 수순 밟기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능한 안바꾸고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대통령의 속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당에서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이상, 정동기 후보자의 사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직접 요인은 공직을 그만둔 뒤 법무법인에서 거액의 봉급을 받은 것이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대통령 측근을 정부를 감시해야 할 독립적 헌법기관의 장으로 지명한 데 있습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시절 ‘대쪽 판사’로 불리는 이회창씨를 감사원장으로 임명해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여러 정치적 계산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감사원장엔 누가 보더라도 독립적인 인사를 앉히는 게 순리에 맞는다는 판단을 했던 겁니다. 청와대 참모를 감사원장으로 지명하는 건 아마 이 대통령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인사의 원칙보다는 ‘누가 가든 잘하면 될 거 아니냐’는 식의 실적 우선주의, 기업 CEO적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렇게 국민 마음을 읽지 못하는데도 이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는 건 정말 왜일까요, 궁금합니다.
박찬수 <한겨레> 부국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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