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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브리핑] 개헌을 추진하려면 먼저 뜻을 밝혀야

등록 2011-01-26 06:24수정 2011-01-26 10:07

양파 후보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까고 까도 비리의혹이 또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후보자만 양파 속성을 갖고 있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지난 23일 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비밀회동 말입니다. 이 회동의 내막이 하루에 한 꺼풀씩 벗겨지는 게 마치 추리소설의 전개방식을 닮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주변 안가에서 이뤄진 이날 회동을 비밀로 하고 싶었던 같습니다. 당 참석자들도 당일 오후에야 모임을 통보받고 부랴부랴 달려갔다고 합니다. 또 참석자들은 이날 회동에 대해 밖에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비밀 회동은 하루도 못 가 들통이 납니다. 한 중앙언론사가 다음날 아침, 이 대통령이 청와대 주변 안가로 비밀리에 야행을 했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입니다.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난 것 같다는 추측도 곁들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만찬 사실을 털어놓았고, 뒤이어 김무성 원내대표도 회동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날 저녁 2시간30분간 계속된 만찬은 이 대통령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로 화가 나 있어 이를 풀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대표 등은 “다 잘못된 일이다. 심기일전해 잘하자. 대통령이 빨리 이런 자리를 마련해 풀어줘 고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당·정·청은 공동운명체로 무한책임을 진다.”라며 참석자들과 함께 정권 재창출을 이루자고 다짐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개헌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음날 23일 당·청 만찬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당에서 제대로 해달라’고 한나라당에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입니다. 김 원내대표는 결국 거짓말한 것에 대해 기자들에게 사과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하루 지나면 감춰졌던 이야기가 드러나니, 앞으로 또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번 사건은 정보를 감추려는 취재원과 이를 알아내려는 언론이 속된 말로 ‘물먹고 물 먹이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청 비밀 만찬에서 논의된 내용일 것입니다. 우선 한나라당 지도부가 정 후보자를 낙마시킨 것을 이 대통령에 사과했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한나라당이 정 후보자의 낙마를 주도한 것은 들끓는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와서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측근 정실인사와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 비판이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정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국민을 모독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제대로 된 당 지도부라면, 오히려 여론을 거슬러가며 결함 많은 후보의 인사를 강행하려 한 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나라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당 중심의 국정운영,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날 만찬 내용을 보면, 한나라당이 정말 그럴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대목도 공연한 의구심과 논란만 부채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되고 있으니 당이 제대로 논의해서 결론을 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개헌에 뜻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개헌론은 이재오 특임장관이 외롭게 불쏘시개 노릇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장관의 개헌 행보는 이 대통령의 뜻이었다는 게 확인된 것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하고 싶어한다는 게 잘못도 아니고 감출 일도 아닐 것입니다.

정작 문제는 이 대통령의 일처리 방식입니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입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발언한 것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발언 내용도 에둘러 표현하거나, 매우 짧고 원론적입니다. “정치권에서 하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2009년 9월30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유치 기자회견) “제한적이지만 헌법에 손대는 과제가 있다.”(2010년 2월25일 취임 2돌 기념 한나라당 당직자 오찬), “필요하다면 개헌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2010년 8·15 경축사)

논란이 일면, 청와대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라고 비켜섭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들뿐이니까요. 그래놓고 당 지도부를 비밀리에 만나 개헌 논의를 합니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원론적인 얘기라고 의미를 축소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모임의 성격상 참석자들이 이 대통령의 말을 그냥 원론적 입장표명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중적 행동에서 음습한 정치공작의 냄새를 맡는다면 지나친 걸까요?

이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고 싶으면, 먼저 본인의 의견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왜 개헌을 해야 하는지, 현행 헌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개헌을 하면 좋은지 말입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판단을 할 것 아니겠습니까?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동의를 얻으면, 개헌이 본격 추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헌의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은 물론 여야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의 의사를 수렴해서 정해야 할 것이고요. 그러나 이 대통령이 현행 헌법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래놓고 별 뜻도 없어 보이는 당 지도부를 몰래 불러다가 개헌 압력을 가하는 모양새를 보이니, 어떤 국민이 순수성과 진정성을 사겠습니까? 뒤에 숨어서 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개헌에 대한 자신의 뜻을 소상히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정치공학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마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해답이 비밀회동은 아닐 것입니다. 공개적인 추진도 정치공학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밀실 막후 추진에 호의를 보낼까요?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헌은 국가의 대사입니다. 이런 일은 정공법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요? 공개된 논의와 설득, 의견수렴 말입니다. 그래도 안된다면 그건 아직 때가 아닌 건 아닐까요?  

박병수 모바일 편집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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