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태와 관련해 세계 언론들이 일제히 오보를 냈습니다. 지난밤 세계 언론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앞두고 10일(현지시각) 하야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외신들이 이렇게 과감히 보도한 것은 이집트 군부와 집권당 간부, 미 정보당국 등이 일제히 하야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국내 언론들도 현지 외신의 보도를 근거로 무바라크 퇴진이 임박했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은 정작 연설을 통해 ‘헌법을 수호하겠다’며 오는 9월까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 권력을 위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이집트 권부가 미국의 입김을 받는다 해도 인형처럼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국민 연설이 오히려 일을 키우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하야를 예상하고 타흐리르(해방이란 뜻) 광장에 모여든 수십만 시민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경악하고 격분했습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시위대에 귀가할 것을 요구했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11일(현지시간)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일 예정입니다. 마침 금요일은 이슬람의 금요예배 뒤 대규모 시위가 예정됐던 날입니다. 야권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 엘바라데이는 “이집트는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집트에 운명의 날이 밝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요.
미국도 적잖은 고민에 빠진 듯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백악관 회의를 열었습니다.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점진적 변화는 원래 미국이 바라는 바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린 무바라크의 태도에 시민들이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만큼 앞으로 사태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오보 사태는 그렇게 흐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전조는 아닐까요.
민주화 이전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이집트에선 권력의 중심이 군입니다. 군은 1952년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 줄곧 권력의 중심에 있어 왔습니다. 군은 이번에도 국가수호를 다짐하는 코뮈니케 1호를 발표했습니다. 군부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앞으로 사태 전개에 중요한 변수로 보입니다.
이집트 사태와 관련해 <한겨레>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이 쓴 ‘이집트는 한국의 87년인가, 80년인가?’ 라는 제목의 특파원 칼럼입니다. 권 특파원은 칼럼에서 이집트 사태의 전개 방향을 지난 시절 한국의 민주화과정과 연계시켜 조망해보고 있습니다.
권 특파원은 광장에 운집한 이집트 시민들을 보면 1987년 6·10 항쟁을 떠올렸을 것이지만, 이집트 권력층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1987년이 아닌 1980년 한국이 자꾸 중첩된다고 말합니다.
권 특파원은 80년 당시 한국의 민주화 열망이 ‘광주’에서 미국에 배신(?)을 당한 뒤 80년대 대학가는 ‘반미’ 물결로 뒤덮였던 점을 지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할까? 무바라크의 퇴진을 늦추는 게 오히려 급변사태를 유도하는 결과를 낳진 않을까? 지금의 이집트에서 마치 80년 한국의 역할극을 보는 것 같다며 권 특파원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곽노필 편집국 부국장 nopil@hani.co.kr
곽노필 편집국 부국장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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