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청와대 회담이 무산된 뒤 양쪽의 책임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손학규 대표는 14일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는 어제(13일) 등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등원 전에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서) 최소한 날치기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유감표명 한마디라도 국민에게 들려주려고 했던 우리의 충정이 오히려 순진했고 부끄럽게 여겨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야당에 대한 진솔한 자세 없이 계속 야당을 우롱하고 국회를 유린하고 있다”고 이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습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속좁은 대통령 밑에서 살아왔는지, 참으로 한심하다. 대통령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사실상 영수회담 제의했고, 민주당은 어떤 조건도 걸어서는 안된다는 그들 요구대로 모든 조건을 철회했지만, (청와대 쪽에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손학규 대표로선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면서 동시에 국회 등원의 명분을 찾으려 했는데, 이런 구상이 어그러져서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습니다. 굳이 이 대통령에게 대표회담을 구걸하는 식으로 비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국회 등원의 고리를 먼저 풀어버림으로써 ‘통 큰 민주당’과 ‘속좁은 청와대’를 대비시키는 게 정치적으론 더 낫다는 판단도 했음직 합니다. 어쨌든 실리는 얻은 게 없지만, 정치적 효과만으로는 ‘청와대 회담 포기, 국회 등원’ 결정이 손 대표에겐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청와대의 득실입니다. 이 대통령으로선 국회가 열리기 전에 손 대표를 만난다면 어떤 식으로든 예산안 날치기 문제에 관해 사과(대개는 유감 표명이란 표현을 쓰죠. 그런데 ‘유감 표명’이란 건 사과일까요, 아닐까요? 저는 정치인들의 숱한 ‘유감 표명’을 보면서, 솔직하고 깨끗하게 사과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를 해야 했을 텐데, 그런 부담을 덜었다는 건 성과입니다.
제가 취재기자로 지켜본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사가 잘못돼도 끝까지 그걸 번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장관 또는 청와대 수석을 바꾸면 그건 자신의 첫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건데, 그렇게 하기가 싫은 겁니다. 대통령의 ‘권위’에 흠집이 간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 대통령이 예산안 처리에 관해 사과든 유감이든 하지 않으려는 심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1야당 대표와의 대화를 피한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습니다. 이건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 건인 ‘소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국민에게 더 각인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겁니다. 곧 취임 3주년(2월25일)이 될 텐데, 이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을 확산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될 게 분명합니다. 2월 국회도 순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한차례 크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은 임시국회 의제나 일정 등에서 이젠 양보하려 하지 않을 거고, 이건 고스란히 한나라당의 부담으로 남게 될 겁니다. 15일치 <한겨레> 정치면을 보시면, 이명박-손학규 청와대 회담 무산에 따른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앞으로 언제쯤 야당 대표와 마주앉아 국정을 함께 고민하는 대통령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한번 점쳐 보시길 바랍니다.
박찬수 <한겨레> 부국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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