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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브리핑] 삼성가의 편법 증여

등록 2011-02-19 16:37

이건희 삼성회장이 경영권 세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의 2대 주주인 제일모직에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도록 했고, 그래서 제일모직은 손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대법 김천지원 민사합의부(재판장 최월영)는 18일 “이 회장은 제일모직에 130억4978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전환사채를 이용한 삼성 경영권 세습은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사건 내막은 이렇습니다. 1996년 삼성 에버랜드 이사회는 전환사채를 주당 7700원에 125만4천여주(96억원)를 발행합니다. 에버랜드 지분의 62.5%에 이르는 막대한 양입니다.

전환사채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다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채권 보유자의 요청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경영권 세습을 위해 전환사채를 선택한 것은 전환사채의 이런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에버랜드의 주요 주주는 이건희 회장 등 개인과 삼성전자, 제일모직, 중앙일보, 삼성전자 등 법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버랜드 이사회는 이들 지분을 이 회장의 자녀들에게 배정합니다.

이 회장의 자녀들은 이를 사들인 뒤 주식으로 전환해 단숨에 에버랜드 최대주주로 떠오릅니다.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경우 지분 51%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이 사장의 지분은 에버랜드의 추가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25.1%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최대 주주입니다. 이 회장의 딸 이부진 에버랜드 사장과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은 나란히 8.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경영권 세습은 사실상 에버랜드 경영권 장악으로 완결되었습니다. 삼성그룹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지배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을 19.34%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의 7.23%, 삼성전자는 삼성카드 지분의 46.9%를 갖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은 2010년 기준 자산규모가 193조원인 국내 최대그룹입니다. 그러나 삼성의 경영권 세습을 위해 들어간 돈은 이렇게 단돈 96억원이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이 회장의 자녀에 배정된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주당 가격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에버랜드는 1주당 7700원에 발행했는데, 실제 18일 법원은 1주당 7만9086원으로 산정했습니다. 10분의 1도 안되는 값을 매긴 겁니다. 증여세 포탈 목적의 편법 증여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배경입니다.


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한 제일모직 등의 입장에서 보면, 값싼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 소액주주들은 2006년 제일모직 이사 및 감사 1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입니다.

앞서 대법원은 2009년 이 건과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주주들이 스스로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민사재판부는 △이 회장이 자녀들에게 삼성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목적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게 했고 △이 회장의 지시로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날 판결은 사건 발생 15년 만이고 소송이 제기된 지 5년 만에 난 것입니다. 이렇게 늦어진 것은 검찰과 다른 법원이 이 회장의 형사재판기록 송부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이 무리한 경영권 세습을 위한 편법·탈법 증여의 관행에 대한 경종이 되길 기대합니다.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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