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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비영리법인 지배구조 개선해 신뢰 회복해야

등록 2023-02-15 18:47수정 2023-02-16 02:08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정연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비영리 부문의 위기라는 말이 돌림노래 같이 들릴 지경이다. 미르재단이니 케이스포츠재단이니 하는 비영리법인들은 제3자 뇌물의 도관이자 국정농단의 불씨가 됐다. 특히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싸고 촉발한 비영리 부문의 회계처리와 정보공개에 관한 논란은 회계기준의 강화, 결산서류 공개대상의 확대 등 규제로 이어졌다. 급기야 현 정부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 강화, 부당지급 국고보조금 환수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비영리 부문에다 무능과 부패의 딱지를 확실히 붙여버렸다.

지난 정부에서는 시민사회를 국정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대화와 소통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는 모르겠다. 영국, 호주 등의 사례를 모델로 삼아 지금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 쪼개져 있는 공익단체들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을 통합한 단일한 행정기구로서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시효가 한참 지난 것 같다. 국정농단사건을 계기로 각 부처에서는 비영리법인의 설립 허가를 내주는 데는 무척 소극적 자세를 취해 왔고, 시민사회발전기본법 제정이나 기부금품법 개정 같은 제도적 과제들도 별로 달성된 것이 없다.

요컨대 정부의 정치적 지향과 무관하게 시민사회의 법적·제도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대체로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고는 자꾸 일어난다. 비영리법인들에서 모금액을 횡령하고 친척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일부 임직원에게 과다 보수를 지급하고 투자에 실패하는 사례들이 쌓여가는데 “좋은 일 하려다가 그랬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좋은 일 하려다가” 때문에 시민들은 비영리 부문의 실패에 더 실망하고 더 분노한다. 때로는 회장 이재용보다 인간 윤미향에 더 많은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가 그러하다.

적당히 관리하면서 보조금을 준다고 한들, 아니면 도둑놈 딱지를 붙이고 때려잡는다고 한들 외부적 요인만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좋은 일 하려다가”가 표상하는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신뢰는 정부가 회복시켜 줄 수가 없다. 각 단체에서 의사결정과 권한 배분을 위한 지배구조를 제대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같은 기금 배분형 단체뿐 아니라 각종 의료법인,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들도 모두 비영리법인으로 설립·운영하기 때문에 비영리법인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다.

자본시장 연구자로서 처음 비영리 세계에 발을 들인 몇 년 전만 해도 주식회사에서 발전한 온갖 대리비용 통제 수단들은 비영리에 잘 적용하면 좋은 지배구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사들의 의무와 책임은 강화하고, 잘못하면 소송을 제기하고, 잘하면 보수도 많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재단의 도움을 받아 비영리법인들의 이사회 운영실태를 조사하면서 이런 망상이 깨졌다. 많은 단체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고민이 깊었다. 최근에는 소수의 명망가나 설립자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구성하던 이사회를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하고, 특히 사무국 출신의 이사진 선임을 시도하는 등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영수증 처리와 장부 기재만 뒤진다면 먼지야 좀 나겠지만 잃어버린 신뢰가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에서도 필요하다면 비영리법인의 운영 관련 제도 개선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비영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결과만큼이나 소통의 과정과 일 처리의 절차를 소중히 하는 비영리의 고유함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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