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주민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키이우 외곽의 도시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마을을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왜냐면] 안승진 | 굿네이버스 루마니아 대표
지난해 12월,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 갈라치에도 겨울 강추위가 닥쳤다. 이곳으로 파견되기 전, 지구에서 가장 더운 나라로 불리는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다섯 해를 보낸 터라 이곳의 추위는 혹독하게 느껴졌다. 갈라치는 우크라이나 남서부 국경에서 차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는 주요 거점이자 피난처 도시다.
24일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째를 맞는다. 피해 규모는 1년 전과 마찬가지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난민들이 전쟁 장기화로 혹독하고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굿네이버스의 협력 단체 직원은 “난방을 위한 가스나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식량이 부족해 이재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추위를 힘겹게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주민 약 800만 명이 국경을 넘었으며, 600만 명 이상이 우크라이나 안에서 이주 대피했다. 전쟁 난민으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난민 대부분은 여성과 아동으로 재난 속 폭력과 추위로 고통받으며 안전·건강·교육으로부터의 소외 등 인도적 피해가 우려된다.
한국에서 시작한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는 아동 권리를 최우선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긴급구호 대응단을 루마니아에 파견해 6만여 가구에 식량과 겨울 긴급 물품을 지원했다. 1만6천여 명의 난민 아동과 가족에게는 주거지와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PSS) 등을 제공해 삶을 재건하는 일을 돕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됐지만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두 나라 군인 사상자는 무려 20만 명에 달하고,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도 1만8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 <시엔비시>(CNBC)에 따르면,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어린이 1만4천명이 러시아로 강제 입양됐다고 한다. 우리 단체는 이를 막기 위해 협력 단체인 ‘파이트포프리덤’(Fight for Freedom)을 통해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루마니아 수체아바로 긴급 이송된 고아 300여 명에게 안전한 보호시설과 생필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우리의 구호 물품을 받으러 온 73살 여성 보흐다노바는 우크라이나 서북부 이바노-프랑키비츠에서 왔다. “남편이 노모를 모셔야 하고 딸이 군인으로 복무해 13살 손녀만 데리고 간신히 피난처로 왔다”면서 “이후 들린 소식으로는 집과 마을이 폭격을 맞아 가족과 살림을 다 잃고 고향 땅엔 이웃마저 사라져 공동묘지만 늘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난민과 전쟁 피해자의 삶이 회복하고, 그들의 일상 터전을 재건해야 비로소 시작한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전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행동과 도움의 손길은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