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방치된 안흥진성 동문 일대. 태안군 제공
[왜냐면] 정의도 | ㈔한국성곽학회 회장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일원에 있는 안흥진성은 1583년(선조 16년)에 축성된 수군진성으로 충청 수군의 역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 성곽 가운데 드물게도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과 용도(좁고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가 축조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축성 시기를 알려주는 각자성석도 확인됐다. 이처럼 체성의 보존 상태가 좋아 조선 시대 성곽의 축조 방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조물이자 태안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역사문화자원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11월2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각종 지리지 기록과 고지도 등 자료를 살펴보면, 동서남북으로 사대문을 설치했고 내부에는 객사 동헌을 비롯한 세검당, 군향고 등을 건립한 한편, 북문과 서문 사이에 태국사를 뒀다. 나라에서 축조한 수군진성 안에 사찰이 있고, 바다를 바라보는 남문루의 이름이 파도를 잠재운다는 ‘복파루’인 것은 안흥진성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안흥진성이 삼남지방의 세곡을 조운선으로 운송할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태안반도의 안흥량을 조망하기 때문이다. 안흥량은 수로가 매우 험난하고 암초가 많아 침몰사고가 잦았고, 왜적이 전라도를 지나 수도 한양으로 이르는 뱃길로서 경기지역 방어의 요충이기도 했다.
안흥진성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태안군에서는 역사적·고고학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공간을 보존 정비해 군민과 함께 향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안흥진성 안에 있는 군사보호시설이 상당한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문화유산을 민족문화로 계승하고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문화재보호법의 기본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군사보호시설 안에 있는 동문(수성루, 壽城樓)은 조선 시대 후기에 제작된 태안군 지도에서 태안군-안흥진성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안흥진성이 수군진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동문은 차단성과 함께 일종의 원문(轅門) 기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안흥진성의 핵심시설인 동문과 주변 성곽이 군사시설 보호구역 안에서 훼손·방치되고 있다. 보존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 일차적 정비가 시급하다. 또 문화유산의 개방을 통해 상시적 보수·정비를 추진하고 역사·문화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동문 일원은 주변 경관 조망이 탁월한 곳이지만 철책으로 막힌 군사보호시설이라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 조만간 안흥진성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 해제·개방돼 태안군민뿐 아니라 우리 국민 누구나 그 역사·문화적 가치를 누리게 되기를 희망한다.
문화유산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 세대만 누리는 게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승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유산 보호 정비는 우리 세대의 의무다.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그 원형을 잃어간다면 그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안흥진성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군사보호구역 해제와 함께 본격적인 정비사업과 개방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