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18일 금속노동자결의대회 모습. 꽃다지 제공
[왜냐면] 고동민 | 쌍용차 노동자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2009년 봄, 쌍용차 평택공장은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 깔깔대던 소리가 일자리를 잃어가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겐 파업을 이어주는 노래였다. 미래에 대해 힘줘 이야기할 수 있는 악보였고, ‘공장은 노동자들의 것’이란 구호를 가능하게 한 악기였다. 그때 나는 그저 밤새 끙끙대다 간신히 다음날 파업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허겁지겁 진행하는 천지분간 못하던 문화부장이었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은 불안해했다. ‘함께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지독하게 간단하지만 어쩌면 불가능한 이야기를 확인시켜줘야 했다.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구호가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던 동료와 가족을 보고 안도했다. 그들의 마음을 씨줄과 날줄로 엮을 방법은 나에겐 오로지 음악뿐이었다. 그것도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노랫말과 멜로디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성 쩌는 민중음악뿐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읍소하고 수소문해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에 연락했다. 자재 창고를 비워 무대를 만들고 객석을 만들었다. 마이크가 없어 지역에서 빌리고, 콘솔(제어반)도 빌려 간신히 음향을 준비했다. 노찾사에서 무슨 노래를 듣고 싶냐길래 ‘바위처럼’, ‘민들레처럼’ 등을 요청하자 난감한 표정으로 ‘꽃다지’ 노래라고 했다. 선곡까지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한 것 없이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찾사를 비롯한 민중가수들의 공연은 준비에 비해 아름답고도 가슴 울리는 시간이었다.
많은 문화 활동가들이 공장 안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해주셨다. 파업이 길어져서 출입이 어려워졌을 때도 공장 앞은 어김없이 그들의 노래와 몸짓으로 채워졌다. “구호 외치면 연행”이라는 경찰들의 협박에도 노동자들에게 힘내라는 구호를 끝내 외쳐 연행된 문화 활동가가 있었다. 공연 뒤 구사대와 용역경비에 맞서 싸워주신 수많은 활동가가 있었다. 소중한 마중물이었다.
파업이 끝난 뒤 많은 노동자와 활동가가 구속·수배됐고, 몇백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가 일사천리로 판결됐다. 삶의 희망을 잃은 해고자들은 유명을 달리했고, 생기를 잃은 해고자들은 눈물을 삼키며 대한문 분향소를 만들고 지켰다. 매일같이 추모문화제를 이어갔다. 쫓겨나고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한문에서 노래가 되고 춤이 됐고 집체극이 됐다. 그리고 꽃다지를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찐 연예인’ 꽃다지를. 서정적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와는 달리 웃긴 드립(즉흥성 발언)을 끊임없이 날리는 꽃다지를 말이다.
지난해 6월8일 파리바게뜨 문제 해결을 위한 2차 시민촛불 문화제 모습. 꽃다지 제공
변변치 못한 음향 장비로도, 노래와 연주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꽃다지는 늘 최상의 컨디션으로 대한문 앞을 함께 지켜냈다. 공연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투쟁에 노랫말을 붙이고 음표를 채워 또 다른 노래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같은 노래를 다르게 만들고 공연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함을 유지해갔다. 공연하기 위해 운동하고 악기를 배우고 새로운 작곡 시스템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본 꽃다지도 충분히 멋졌지만 가까이서 본 꽃다지는 치열함의 끝판왕이었다.
좀처럼 해결이 어려웠던 쌍용차 투쟁 덕택에 꽃다지와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만큼의 술자리, 밥자리도 잦아졌다. 꽃다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리에서 만나 함께 싸워 나아간 기억에 있겠지만 같이 나눈 밥과 술에게도 있겠다. 수없이 어려운 투쟁 끝에 복직한 뒤 거리에서 꽃다지를 만나기 어려워졌지만 꽃다지는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어디선가 공연이 끝난 뒤 밥과 술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지난 투쟁을 복기해보면 뭐 하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많은 이들의 마음과 손과 발이 채워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쌍용차 투쟁은 손해배상 문제나 공장 내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함께’라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이어가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투쟁을 시작할 때 30대였던 나는 이제 50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20여 년을 채워준 수많은 목소리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의 삶으로 가사를 만들고 투쟁의 목소리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꽃다지가 30년이 됐다. 긴 세월 곁을 지키고 함께 싸웠던 꽃다지에게 우리 모두 빚이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안정적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그들의 부름에 화답하면 좋겠다. 25일 오후 3~11시 서울 용산구 ‘슘(Zum)’에서 열리는 꽃다지 후원주점 ‘주(酒)문’(
bit.ly/꽃다지후원주점티켓구입)에 많은 사람이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