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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한국사회에 부는 영어열풍을 바라보며

등록 2006-05-25 21:41

왜냐면
걱정되는 것은 한국인의 영어에 대한 맹목성이다. 자국의 말글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뒤, 외국어를 받아들여야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에스페란토어는 폴란드의 안과의사인 자멘호프 박사가 창안한 국제어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언어 문제가 주민들 간의 불화요인이었다는 점을 직시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 이러한 분쟁을 끝내고자 하였다. 에스페란토어는 비록 각국에서 천시받는 처지가 되어버렸지만 가장 합리적으로 창안된 언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에스페란토어는 언어를 통일해 지구촌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도록 하자는 원대한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영·미를 중심으로 하는 영어 지상주의에 반대하여 여러 언어의 독자성을 존중하고 각국의 문화와 관습, 정신을 담아내자는 의미도 있다.

영어 유치원과 조기 외국유학 열풍에다 심지어 영어발음을 하기 쉽도록 혀 수술까지 한다. 영어에 과민하다 싶을 정도의 관심을 보이는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이런 영어 광풍 속에서 한국인의 사고방식뿐 아니라 혼까지도 영어식으로 바뀐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꿀꿀이죽’ ‘기브미 더 쪼꼬렛’으로 대표되는 전후 한국, 미국의 무상원조 말고는 난국을 헤쳐가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얼굴이 희고 눈이 파란 군인들과의 만남 이후 60여년 줄곧 한국은 영어열풍의 나라가 되었다. 영어는 정치·경제·사회적인 면뿐만 아니라 시내 한복판 젊은이들의 패션, 시골 산구석의 할아버지 신발 상표까지 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이곳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 거리의 상점 간판만 봐도 영어가 난무하니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방문이라는 명색마저도 무색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각종 매체의 보도를 보면 젖먹이 때 모국어 언어능력이 충분히 형성된 아이가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외국어 습득 능력이 더 탁월하다고 한다. 무턱대고 영어열풍에 떠밀려 모국어도 소화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학습을 강요하다가는 영어는 물론이고 모국어 습득 또한 불안정해져서 정서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의학적으로도 자국의 음식은 자국민의 몸에 가장 정확히 맞다고 한다. 하물며 자국민의 정신과 문화를 대변하는 국어를 모르고서야 외국어 소화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영어공부 자체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다. 진정 걱정되는 것은 한국인의 영어에 대한 맹목성이다. 에스페란토어가 실현될 수는 없을지언정 불가피한 대안이 영어의 맹목적 추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자국의 말글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뒤, 외국어를 받아들여야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혼’을 ‘고스트’(Ghost)라고 번역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미세한 민족혼의 정서까지 번역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정은나리 /광주 북구 두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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