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기획예산처가 지난 6일 전국 224개 공공기관(국가공기업, 정부산하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 기타 부처 선정 기관)에 대해 ‘공공기관 경영위험요소 제도 시행지침’을 배포했다. 기획예산처는 지침에서, ‘경영위험요소’에 ‘직원의 처우개선에 관해 체결된 각서, 협약, 기관장의 대내외 공약사항’을 공시하라고 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기획예산처는 공공부문의 임금 및 단체협약만을 염두에 두고 이 지침을 작성하지는 않았고, 그동안 공공기관 경영혁신 점검과 관련하여 공공기관의 협약이 문제되어 왔기에 경영공시 대상에 포함시킨 것뿐이라고 한다.
갈수록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가 강하게 요구되는 현실에서 공공기관의 공공성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해 공공기관의 임금·단체협약을 경영공시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노사간에 체결한 단체협약을 공공기관의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주는 ‘경영위험요소’로 설정하는 기획예산처의 발상 자체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단지 ‘경영위험요소’라는 표현상의 선정성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번 지침을 통해 공공부문의 단체협약, 단체교섭권, 더 나아가 노동기본권을 바라보는 정부의 기본적인 시각과 철학이 얼마나 낡은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노사협약을 공공기관의 ‘경영위험요소’로 설정하는 발상은 공공부문의 단체협약, 단체교섭권, 더 나아가 노동기본권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과 철학이 얼마나 낡은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러면서 정부는 진정한 ‘경영위험요소’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막고 있다.
1998년 이 땅에 구제금융(아이엠에프) 경제위기가 강타할 즈음부터 공공기관 노조와 종사자들은 철밥통, 신이 내린 직장 등 숙명적 낙인을 받아왔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노동조합을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의 주범으로 등치시켰다. 나아가 그런 노조와 각 공공기관 경영진이 체결한 노사 임금·단체협약을 공공개혁의 걸림돌로 여겨왔다. 정작 공공기관 노조가 내세웠던 사업장내 불합리한 구시대적 차별과 관행의 철폐 문제나, 기관장 인사를 둘러싼 낙하산 관행 근절 등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혁 요구는 철저하게 외면됐다.
공공기관 노조와 공공기관의 노사협약을 방만경영 내지 공공개혁의 걸림돌로 인식하면서, 지난 몇 년간 공공기관의 임금·단체협약은 더 이상 노사관계법상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 정부가 공공개혁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마음껏 유린해도 좋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매년 되풀이되는 기획예산처의 경영혁신 점검과 경영평가에서, 그리고 최근의 감사원 기획감사에 이르기까지 공공기관의 노사협약은 집중적인 점검 대상이 됐고 급기야 ‘경영위험요소’로까지 부상했다.
문제는 이런 현실 속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근본적 쟁점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기획예산처와 정부는 공공부문 노조와 종사자에 대해 정부 지침대로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감히 단체협약이니 단체교섭권이니 하는 노동기본권 문제를 들먹이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진정한 ‘경영위험요소’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막고 있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경영진, 민간인 전문가들이 각종 정부위원회나 기관 이사회 등을 중심으로 점점 유착되고 있고, 정치권의 ‘보은’, ‘회전문’ 등 낙하산인사, 공공기관의 위인설관 인사 등 정작 중요한 ‘경영위험요소’는 늘어나고 있다. 공공기관 노조와 협약을 공공개혁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악의 축’으로 설정하면서도 정작 지켜져야 할 공공부문의 진정한 개혁에는 눈을 감고 있다.
박용석/민주노총 공공연맹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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