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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글 모양은 잘 디자인된 것인가? / 정태충

등록 2007-10-08 18:04

왜냐면
지난 7월3일부터 3일 동안 중국 옌지에서 열린 ‘다종언어 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한국과 북한, 중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 내의 11개 소수민족 대표 등 1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한 이 학술대회에서는 다국어 입력방식, 정보처리와 문자·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와 기계번역, 정보통신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만나기 힘든 북한 학자들과 만나 교류한 것과 안마태 선생의 한글을 이용한 한자입력기가 인상 깊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이동훈군과 같이 연구한 ‘시각적 인지 측면에서 한글의 디자인이 잘된 것인가’를 발표하였다.

글자 인식시간·선의 길이·넓이
한자·영어문자와 비교분석 결과
한글은 적은 면적, 적은 선으로
더 잘 눈에 들어오는 과학문자

한글은 표음문자로 어떤 소리도 표현해낼 수 있고 규칙적이어서 배우기 쉬운 과학적인 문자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자 모양이 다른 문자들과 유사성이 없고 독특해 그 모양의 설계가 얼마나 우수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연구를 찾기 힘들었다. ‘ㄱ’ 모양은 ‘기억’으로 발음할 때 목의 모양을 형상화했고 ‘ㄴ’ 모양은 ‘니은’ 할 때 혀의 모양을 형상화하는 등 세종대왕이 음성과 발성기관의 관계를 잘 분석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한글의 모양은 진정 사람의 눈으로 볼 때도 잘 디자인된 것일까?

문자의 모양은 한자처럼 선이 많은 그림 수준에 가 있는 아주 복잡한 모양과 모르스 부호나 점자처럼 점이나 간단한 선의 조합으로 구성된 암호 수준의 아주 단순한 형태가 있다. 자연어를 표기하기 위한 대부분의 문자는 그 중간 정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이 많을수록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고 구별하기가 쉽지만 쓰기 힘들고 기억하기 힘들다. 한글은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일까?

한글의 디자인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한글과 영어 및 한자가 차지하는 넓이와 길이 및 시각적 인식 측면에서 비교해 보았다. 예를 들어, ‘韓國’, ‘한국’, ‘HanGuk’ 등과 같은 단어 수백개에 대해서 분석해 봤다.

그 결과 한글과 한자의 비교 연구에서는, 같은 크기에서 한자는 한글보다 인식하는데 3.1배 시간이 더 걸렸으며, 글자를 구성하는 선은 2.4배 길었다. 실험자들이 2m 거리에서 평균적으로 한글은 11.2포인트까지 정확하게 인식하였고 한자는 16.8포인트까지 인식하였다. 즉, 예상대로 한글은 한자보다 글자 면적이 적고 선의 수와 길이를 적게 사용하면서도 더 잘 인식되는 특징을 지녔음을 증명하였다.


한글과 영어의 비교 연구에서는, 먼저 같은 크기에 대해서 문자를 기준으로 영어는 한글에 비해 공간은 1.3배, 선의 길이는 1.2배 차지한다. 선의 길이는 ‘ㄱ’과 ‘g/G’, ‘ㅏ’와 ‘a/A’에서 보듯 영어가 더 긴 선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글은 모아쓰기를 함으로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한 음절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넓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글 20포인트 글자와 영어 18.2포인트 글자가 대략 같은 넓이를 차지하게 된다. 영어에 대해서도 한글은 적은 면적, 적은 선의 길이로 더 잘 인식되는 특징을 가졌음을 증명하였다.

이렇게 한글이 한자 및 영어에 대해서 차지하는 넓이, 선의 길이, 인식률, 인식거리 등에서 모두 우수한 결과를 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문자 설계 단계에서 ‘ㄱ, ㅋ, ㄲ’과 같이 소리와 모양을 연관시키고, 모음을 천지인으로 조합한 점과 음절을 만들 때 2차원화한 모아쓰기 방식 때문이라고 본다. 한글은 문자 입력방식으로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출력된 한글은 더 적은 면적, 더 적은 잉크 비용으로 더 멀리서 더 정확히 보이는 것이다.

남은 과제로, 이런 우수한 시각적 특성을 가진 한글 문자로 전 세계 언어를 표현하게 만들려면, f나 v 등의 몇가지 표기하기 어려운 외국어 발음까지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의 확장이 필요하다. 한글로 세계 대부분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기쁨을 기대해 본다.

정태충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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