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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미술관의 적정관람 인원에 대하여

등록 2011-02-08 19:15

기계처럼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고함, 웃음…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이 가능할 리 없다
박홍근 서울 구로구 구로1동

일반적으로 미술관이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은 화이트 큐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이트 큐브는 널찍하고 하얀 벽 한가운데 오직 그 작품만 걸어놓고, 관람을 방해할 다른 요소는 모두 없애버림으로써 작품과 관객이 일대일로 만나게 하는 방식이다. 관람객은 시공간이 격리되는 느낌을 받음으로써 그 무엇도 없이 작품과 홀로 마주치게 되며, 그로 인해 작품에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작품 앞에서 한없이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적정 관람 인원이라는 것은 관람객이 작품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 줄 수 있는 방식으로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해당 전시회를 주로 보도하는(보통 전시회를 주관하는) 언론사는 단지 얼마나 많은 인파가 찾아와 과거 기록을 경신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적정 관람 인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과거 <한겨레>가 주관했던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의 경우, 연일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은 보도했어도 그것이 적정 관람 인원인지 분석해본 적 있는가?

인기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은 전문적 미술애호가보다, 교양의 폭을 넓히기 위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작품만을 생각할 수 없다. 낯선 곳에서 늘 그렇듯이 남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저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다면 나는 그 작품을 지나쳐서 나중에 되돌아와 그 작품을 봐도 된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이 작품 앞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파가 빽빽하게 밀려올 경우 이 작품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본다는 건 끔찍한 일이 된다. 따라서 나도 이 작품 앞에서 길게 머물 권리가 사라지고 만다.

결국 인파가 많다는 것(적정 관람 인원을 넘은)은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끊임없이, 내 바로 뒤에서 누군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작품 앞에 서 있어야 하는 당연한 시간을 나의 이기주의요, 욕심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기계처럼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고함, 웃음소리 등이 끊임없이 나를 침범해 들어온다. 이는 지금 있는 이곳을 내놓으라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이 공간을 그 소리의 주인들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곳으로 탈바꿈시키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이 가능할 리 없다.

이번 설 연휴에 찾았던 모 미술관도 수많은 인파를 보고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말았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대기 줄을 보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가늠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보다는 이미 관람객 수가 미술관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 관람 인원을 넘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인기 전시회의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많은 관람객이다. 미술관이 밀려오는 인파를 느슨히 통제할 수밖에 없는 고충도 여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람객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미술관을 찾는다는 것은 빡빡한 삶에서 여유를 갖기 위한 것이다. 많은 인파가 찾아왔다는 설 연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얼마나 여유를 가지고 돌아갔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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