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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른바 ‘왕재산 사건’ 수사에 이의 있다 / 박래군

등록 2011-08-03 19:11

박래군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집행위원장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왕재산? 함경도 어디쯤에 있는 북한의 김일성 혁명유적지라는 친절한 신문기사의 설명보다는 보천보경음악단과 함께 북한을 대표하는 경음악단이고, 이 음악단이 최근에는 ‘눈물 젖은 두만강’과 ‘목포의 눈물’과 같은 남한 노래를 연주하기도 한다는 인터넷 설명이 더 와 닿는다.

북한에서 인기 있는 경음악단의 이름이 대한민국의 언론지상에 대대적으로 거론되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보좌관이 연루된 대규모 지하당 조직, ‘왕재산 사건’ 보도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최초의 명칭은 ‘일진회’였다. 10년이 넘도록 암약한 지하혁명당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왔다는 국정원이 조직명도 모른 채 사건 수사부터 했다는 얘기가 된다.

사건 보도는 어마어마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보도에 드러난 지하혁명당의 활동은 무엇을 했다는 것인지 너무도 미미하다. 석연찮은 구석은 곳곳에 널려 있다. 우리는 아직 이 조직의 강령도 알지 못하고, 국정원이 제시한 그림표 외에 조직의 구체적인 상황도 모른다. 더욱이 이 사건과 연루되어 구속되었거나 피의자, 참고인 조사를 받는 사람들은 이런 지하혁명당 사건 구성을 한사코 부인하고 있으니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지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사항들이 국정원의 일방적인 설명밖에 없고,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 국가보안법 사건마다 되풀이되는 과장된 사건 발표와 보도, 피의사실 공표의 악행이 이 사건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40명 가까운 사건 연루자들을 마구잡이로 일단 압수수색하고, 잠깐 차나 한잔 하자며 불러내서는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수사선상에 오른 인천 지역의 기초단체장과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이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의 간부 등의 구체적인 혐의는 사건 발생 한달이 가깝도록 드러난 게 없이 제자리걸음이다. 더욱이 민주당의 전 국회의장 보좌관은 무엇을 했다는 것인지 혐의 사실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의 미래를 섣불리 진단하자면 과거 대대적인 반국가단체로 발표되었다가 개인 친북행위로 판결 났던 일심회 사건이나 요즘 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받는 간첩단 사건의 초기 수사발표 때를 보는 것 같다.

더욱이 국정원은 이 사건 수사를 진행하면서 변호인 접견을 수시로 제한했고, 피의자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침해했으며, 수갑까지 채우고 수사를 하고, 가족까지 조사받을 수 있다며 쌍욕을 해대면서 겁박했다. 또 피의자 가족들의 면회요청에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수사에 협조 안 해서 면회해주지 않는다고 했다가 면회를 요청하는 가족을 참고인으로, 피의자로 둔갑시켜서 면회를 차단하기까지 했다. 그토록 자신 있는 사건 수사라면 과연 이런 반인권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까? 물리적인 고문만 안 했다 뿐이지 밀실수사에 강압수사를 할 수 있는 한 다 하고 있다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변호사협회조차 국정원 수사관행에 항의하고, 변호인단은 헌법소원과 준항고를 제출하고 있겠는가. 뭔가 자신 없고, 부족한데 억지로라도 사건을 만들고 싶은, 그래서 한 건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국정원과 검찰의 모습에서 내년 정치적 대회전을 앞두고 야권과 진보진영에 정치적 타격을 주고 싶은 의욕을 읽어낸다면 무리일까?

국가보안법 그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악법인데, 거기에 국정원과 검찰이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인권침해를 수시로 자행하면서 만들어내는 사건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나는 밀실에서 온갖 인권침해를 자행하면서 만들어내는 국정원 표 왕재산 지하혁명당을 보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왕재산경음악단이 연주하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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