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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막걸리, 전통도 모르면서 전통만 고집해야 할까? / 이여영

등록 2012-09-03 19:38

8월23일치 esc ‘비싼 막걸리, 값어치는 글쎄…’를 읽고
막걸리라면 이래야 한다는 한가지 향이나 맛, 재료가 있을까? 막걸리 애호가들에게 물으면 답은 각양각색이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막걸리의 원형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막걸리의 유래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까지 각 가정에서 온갖 곡류를 발효시켜 만들어 마시던 술이 바로 막걸리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인정할 막걸리의 원형이 없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세계인의 입을 사로잡은 발효주는, 와인처럼 맛의 다양성이 극대화된 부류다. 테루아르(지리 및 환경 요인)에 따라 와인의 향과 맛, 재료는 다 다르다. 와인 생산 지역과 생산자들은 그 차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소비자들은 와인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을 즐긴다. 심지어 그 차이 때문에 엄청난 돈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한다.

막걸리 역시 더 다양해져야 한다. 서로 다른 향과 맛, 가격대의 막걸리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거꾸로 획일화는 막걸리를 과거의 술, 추억의 맛에 머물게 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누군가가 자신의 혀나 취향, 노하우만이 막걸리의 원형이고, 기준이라고 한다면? 막걸리 산업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불손한 의도가 있는 주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한겨레>는 이런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나선 격이 되고 말았다(8월23일치 esc ‘비싼 막걸리, 값어치는 글쎄’). 어느 교수의 인상평을 통해 새로운 막걸리의 향과 맛, 재료에 대한 시도를 단숨에 부정하고 말았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월향 막걸리는 너무 달고, 유기농 쌀을 100% 쓰지 않았으며,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의 주장은 막걸리의 다양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미 막걸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이었다. 도정하지 않은 쌀인 현미는 술을 담그기에 쉽지 않은 재료다. 쌀 껍질의 단백질이 발효 과정에서 서로 뭉치는 성질이 있어서다. 이 때문에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현미와 우리 쌀을 6 대 4 정도의 비율로 배합해 막걸리를 만든다. 그 결과 은은한 배나 사과꽃 향기와 특유의 단맛이 난다. 좋은 재료 외에 일주일이 넘는 숙성 기간도 높은 원가의 배경이다. 이런 사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원형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막걸리에 대해 자신의 기준만 고집한다면, 전통도 모르면서 전통만 고집하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야 점차 거품이 꺼지는 막걸리 산업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느 분야에나 근본주의는 있다. 하지만 불분명한 근본을 강요하는 것은 근본주의보다도 더 나쁘다.

이여영 (주)월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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