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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추천도서목록 상업화 유감

등록 2012-09-12 19:37

허병두 서울 숭문고 교사·책따세 대표

추천도서목록은 양면성을 지닌다. 잘 쓰면 책의 세계로 이끄는 근사한 지도이고, 그렇지 않으면 독서를 멀리하게 만드는 무서운 족쇄다. 그래서 훌륭한 추천도서목록을 만들고 제대로 활용하기란 중요하고도 어렵다.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 낭만적이듯 추천도서목록 없이 하는 독서는 확실히 자유롭다. 하지만 이는 그럴 만한 시간과 경제적 형편 등이 충분한 극소수 ‘특권층’한테나 가능하다. 수많은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화 시대에 과연 무엇을 읽으면 좋은지 훌륭한 추천도서목록을 기웃대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특히 어느 분야든지 본격적으로 파고들고 싶다면 다양한 관련서들의 여러 시각을 섬세하게 구별하며 제시하는 추천도서목록은 필수적이다. 다수를 가르쳐야 하는 공교육 현장에서 추천도서목록은 지성의 세계와 감성의 우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로서 역할까지 감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천도서목록은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추천도서목록은 선정한 책들에 대한 특별한 부각이다. 따라서 이는 곧 다른 책들에 대한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 추천도서목록이 강제성과 획일성을 철저히 배격해야 하는 까닭이 또한 여기에 있다. 억지로 어떤 책들을 읽으라고 강요하거나,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할 경우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성과물인 책들을 소외시키고 획일화시키는 위험을 불러온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추천도서목록이 상업성을 띠면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독서를 낳는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경우, 추천도서목록이 강제성과 획일성에서는 점차 벗어나고 있지만 상업성은 더 강해지고 있다. 가령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 모두 추천도서를 발표하지 않는데도 웬만한 서점이나 출판사의 책 광고에는 ‘교과부 추천도서’니 ‘서울시교육청 추천도서’라는 문구가 버젓이 붙어 있다.

이런 식의 마케팅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하게 한다는 최소한의 기본 신뢰를 깨뜨린다. 당장은 해당 책들을 많이 팔 수야 있겠지만 출판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행태다. 근래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라며 발표되는 경우는 더욱 심각한 추천도서목록의 상업화를 보여준다.

<학교도서관저널>은 몇몇 대형 출판사의 자금을 모아 만든 주식회사에서 발행하는 상업적 잡지다. 그럼에도 이 잡지의 제목만 보면 마치 학교도서관과 관련된 공적인 단체나 기구, 모임 등에서 만든 공적인 매체처럼 오해할 수 있다. 더구나 발행인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으로서 추천도서목록을 ‘구매력’의 관점에서 언급했던 인사이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잡지가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들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이를 해당 출판사들이 책 광고에 고스란히 다시 명기하는 데 있다. 여기서 해당 도서들의 좋고 나쁨은 별개의 문제이니 논외로 한다. 다만 추천도서목록을 만드는 상업적 잡지가 주주인 출판사들의 책을 우수도서로 추천하고 다시 출판사들이 이를 책 광고에 대대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명백히 부도덕한 상업화다.

아무리 출판이 어렵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추천도서목록을 상업화한다면 출판에 대한 기본 신뢰를 잃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추천도서 상업화 시스템에 들어가는 책과 저자, 출판사 등은 애꿎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공정성과 신뢰성,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은 추천도서 선정과 발표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적 추천도서목록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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