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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고교 학생회장 선거의 현실 / 이영일

등록 2012-11-28 19:41

11월 중순,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는 학생회가 중심이 된 선거관리위원회와 별도로 교사들로 구성된 지도위원회를 두었다. 지도위원회는 학생회장 입후보자들에게서 공약을 지도·검토하여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고 선거 공약·포스터·소견발표문 등 선거 전반에 대한 지도에 응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이 선거에는 학생 5명이 출마했는데, 1번 후보가 투표 당일 진행된 연설 시간 서두에 지도위원회의 지도와 상관없이 애초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선거 결과 이 1번 후보가 회장에 선출되고, 2번 차점자가 부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3, 4, 5번 후보들이 1번 후보가 지도위원회에 낸 서약서를 어겼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선거관리위원회는 1번 후보가 서약 위반이라며 당선 무효로 하고, 차점자인 2번 후보를 학생회장으로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학교의 한 교사가 선거 과정상 학교가 학생들의 선거연설문까지 검열해 학생자치권을 침해했고, 그 결과 후보자들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1번 후보는 자신의 권리를 옹호한 행위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나는 해당 사안을 심의하며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먼저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첫째는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학생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더 아련하게 다가왔기 때문이고, 둘째는 학교가 후보자들의 선거연설문 등을 사실상 검열하는 그릇된 관행을 ‘교육적 지도’의 범위를 벗어난 인권침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당연한 것처럼 학생자치권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자 그 수습을 학생들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에 떠넘기는 듯한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 분쟁을 ‘학교와 현장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선거 결과 못지않게 더더욱 의미있는 일일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해당 학교장은 연설문 검열이 관례적 지도의 일환이고 그 내용도 표현 변경과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단순 검토라고 했지만, 공들여 쓴 연설문이 지도위원회에 의해 수정되고 애초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에 심적 제약을 받았다면 이는 분명히 학교 쪽의 부당한 선거 개입이자 후보자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는 이 사안을 장장 3시간 넘게 토론한 끝에 1번 후보, 즉 당선자의 행위가 당락 결과에 영향을 끼칠 만큼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 않고, 애초 선거 관련 규정에 인권침해 요소가 있으며, 1번 후보가 선거 규정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불이익까지 받아야 한다면 이는 기본적 학생인권 보호의 원칙이 깨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해당 학교에는 학생자치권과 학생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학생회칙, 학생회 운영세칙, 학생회장 선거규정 등을 서울시학생인권조례에 맞게 개정하고, 당선자의 권리와 의사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으나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선거 과정상의 학생 권리 침해가 일선 학교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을 터이고, 어떤 것이 인권침해인지, 부당한 권리 제약인지는 교사도 학생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적어도 고교 학생회장 선거가 성인이 되기 직전에 경험하는 민주주의의 산 교육과정이라는 자각, 그러하기에 더더욱 학교는 학생들의 선거를 책임있는 자세로 지원해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 사례처럼 학교가 선거 과정에 개입하고 분쟁은 학생들끼리 처리하라는 방식이라면 입후보한 학생과, 애초 잘못된 선거 개입과 권리가 침해된 절차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수밖에 없었던 다수 학생 모두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다른 일선 학교에서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인권의 핵심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영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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