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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무관의 제왕인가 밤의 대통령인가 / 김재성

등록 2013-04-08 19:31

공자는 천하의 도덕이 무너지자 붓을 들었다.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으로 이어온 왕도정치가 무너지고 신하가 임금을,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세상을 더 방치했다가는 명덕(明德)의 세상은 참으로 요원하다고 여겨 작심하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역사서를 <춘추>(春秋)라 일컫는다. 역사를 춘추라 일컬음은 생명이 태동하고 결실을 맺는 봄과 가을이 4계절을 함축할 만하고 또 역사를 기록할 때 인과 의, 봄볕과 가을 서릿발 같은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 이래로 <춘추>는 역사기술의 표준이었다. 춘추를 오경의 하나로 숭상하는 유교 국가가 아니어도 왕조시대의 사관들은 춘추필법에 기대어 사초를 쓰고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는 사평을 긍지로 삼았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직언과 직필을 굽히지 않았던 용기와 신념의 발원지가 바로 <춘추>였던 것이다.

신문이 상품이 된 지 오래고 또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언필칭 언론이라고 하는 이상, 신문이든 방송이든 쓰고 말하고 평하는 전범(典範)은 <춘추>여야 한다. 지금은 한물갔지만 한때 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왜 기자를 일러 무관의 제왕이라고 했는가?

공자가 <춘추>를 썼더니 권력을 찬탈한 무도한 왕들이 두려워했다. 그래서 공자를 소왕(素王)으로 칭했다. 역사를 기록한 공자를 ‘흰옷 입은 왕’이라 했듯이 오늘의 기자들에게 ‘무관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준 것은 그들이 왕조시대의 언관과 사관의 역할을 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산업사회에서 언론사는 기업이다. 그리고 매체는 상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예언·증언·기록·탄핵, 곧 왕조시대의 언관과 사관의 역할이 필요없어졌는가? 그렇지 않다. 언론의 이런 기능은 여전히 요구되고 그 특성이 오히려 언론의 상품성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사회의 다수 언론은 언론의 이런 특성을 특권화하고 그 특권을 사적 도구로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무관의 제왕’이 아니라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거나 그 아류로 전락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본과 권력 앞에 무릎 꿇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자본과 권력의 피붙이가 되고 살붙이가 된 것이다.

그 징후는 지난 대선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형광등 백 개를 켜 놓은 것 같은 아우라.’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아마도 이 기사가 피붙이 언론들의 본격적인 작전개시 신호탄이었으리라. 언론을 유심히 관찰해온 어떤 사람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국민을 가랑비로 적시고 임박해서는 소나기를 퍼부은 격”이라고 말한다. 그 많은 말과 글들이 다 언필칭 언론의 이름으로 한 말이고 글이었으니. 아마도 세월이 지나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쓴 화자와 필자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까?

‘나를 아는 것도 춘추요 나를 죄줄 것도 춘추’라며 두려운 마음으로 역사를 기술했던 공자가 이번 대선과 언론에 대해 기술한다면 뭐라고 할까? 춘추를 완역한 바 있는 훈노(勳老) 서정기(徐正淇) 선생에게 들어 보자. “역사 왜곡의 죄는 당대로 끝나지 않는다. 왜? 그 폐해가 당대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성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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