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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김현희의 ‘과잉 자백’을 보며 / 박강성주

등록 2013-05-01 19:12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87년 11월29일, 115명을 죽인 것으로 되어 있는 김씨는 자신의 범죄를 오래전 자백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김씨가 겪었을,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을 인간적인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그가 얼마 전부터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지난해부터 <티브이조선>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올해 초에는 <문화방송> 특별대담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 방송에도 나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4월10일)를 비롯하여 영국 <비비시>(4월22일)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그러한 김씨를 지켜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김씨가 조용히 자숙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자신의 말대로, 그 끔찍한 범죄를 정말로 반성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말이다.

이는 사건 자체에 논란이 많다는 점과는 다른 사안이다. 알려진 대로, 대한항공 858기 사건은 지난 25년 동안 의혹과 관련해 논란이 이어져 왔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각각 재조사를 실시하거나 시도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논란 중의 하나는 김씨가 재조사를 거부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김씨는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그리고 사형을 당해야 했지만 특별사면을 받은 이로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성실히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를 저버렸던 김씨가 이제 와서 외국 방송에까지 출연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는 이미 충분히 자백하지 않았는가. 1988년 1월15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고백 수기, 신상옥 감독이 만들었던 <마유미>라는 영화, 안기부 주선으로 이루어졌던 수많은 안보 강연과 각종 언론사 인터뷰, 그리고 몇 년 전의 일본 방문까지. 공식 수사 결과의 뼈대를 이루는 그의 자백은 이미 충분하다.

나의 고민은 그의 ‘과잉 자백’을 둘러싼 정치학이다. 왜 이 시점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자백이 적극 재생산되고 있는가. 김씨는 과연 누구를 위해 자백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김씨는 115명을 죽인 대량살상범으로 이는 결코 외국 방송에까지 직접 공개할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특정 대목은 매우 문제적이다. 김씨는 이번 <비비시> 인터뷰에서도 피해자 가족들과 만난 적이 있고 (용서와 화해의 차원에서) 모두 껴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확인하기로, 그 만남은 안기부 주선으로 소수의 가족들과만 비밀리에 이루어졌고(1997년 12월23일), 그 자리에서 김씨가 쓴 ‘가족들과 평생 함께하겠다’는 서약서도 어느 분노한 가족의 요구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바로 며칠 뒤 김씨는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을 하여 가족들의 원망을 샀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김씨의 ‘과잉 자백’은 이와 같은 왜곡을 포함하고 있다.

내가 만난 가족 중 한 명은 사건 관련 재판 당시, 김씨가 사형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김씨를 사형해야 한다면, 한번이 아니라 그가 살해한 수만큼 115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의 자백은 바로 이런 가족들을 향해야 한다. 아울러 아직도 사건에 의혹을 품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115번이라도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해와 용서를 받기 위한 출발점이다.

박강성주 김현희 사건 박사논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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