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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종교인의 정치 참여 이유 / 이천우

등록 2014-01-13 19:12

“발언 속엔 반드시 대중이 공감하는 울림이 있어야 한다.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한 편향적 발언을 삼가고 종교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상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어떤 분이 썼다. 종교인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가. 종교가 인간의 삶 속에 있는데 인간의 삶을 떠나서 종교인의 삶이 어디 따로 있단 말인가.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은 대중이 공감하는 말만 하라고 쓰여 있지 않다. 오히려 세상이 잘못될 때 선지자들은 목숨을 걸고 불의를 고발하고 죄를 책망하며 심판을 경고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예언자적인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요 직무 유기이다.

4대강사업·군사반란·인권유린·유신독재·부정축재와 같은 민감한 사항에 대하여 의식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저항했다.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체포와 고문과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주기철 목사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다가 순교했고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독재에 저항했다가 순교를 당했다. 아모스, 미가, 세례 요한이 불의에 저항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정의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몫을 찾는 행위이다. 이것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정의이다. 대중이 공감하는 것은 축복·성공·평안·위로·건강과 같은 달콤한 말들이다. 강단이 대중이 공감하는 말씀만 선포하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존 웨슬리는 “만약 교회가 부자가 된다면 성령은 교회를 떠날 것이다”라고 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약자들과 함께 사셨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요 좌파들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힘 있는 (보수 우파) 종교 지도자들은 힘없는 갈릴리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했다. 예루살렘의 우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잘 먹고 잘살며 로마와 결탁해서 세상이 안정되길 바랐다. 그러나 갈릴리 좌파들은 메시아가 와서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고 유대 종교의 착취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갈릴리 좌파 사람들은 손에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뜻은 영혼 구원만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 종교적 자유, 착취로부터 해방 등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고자 했다. 영혼 구원과 육체의 구원을 갈구했던 것이다. 종교와 정치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전두환과 같은 사악한 자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할 때 예언자적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다. 그의 사악한 통치는 종교·언론·교육·경제 등 인간사 모든 영역에 미쳤다. 종교적 삶이란 세속적인 삶과 분리된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속에서 사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세상이 잘못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히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든 법이든 돈이든 제도이든 간에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며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 국정원 선거개입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권의 연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자행한 불법행위였다. 박근혜 정부가 수혜자 입장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수사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천주교 신부들이 퇴진을 요구하며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백성이 주인 된 나라에서 정부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 백성들은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하물며 세상의 빛이요 등불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침묵하는 것은 세상의 아픔을 거부하는 비겁한 행위이다. 저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카를 바르트는 말했다. “교회에 핍박이 없음은 십자가를 외면했기 때문이다”고. 예언자다운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아는 사람이다. 분노의 얼굴이 없음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천우 안동 동안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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