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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불행 권하는 사회 / 이유심

등록 2014-08-27 18:47

전직 아나운서, 결혼 대박. 존재만으로도 살짝 배 아픈 한 지인은 입만 열면 망언을 쏟아낸다. “다들 왜 결혼 안 하나 몰라. 이렇게나 행복한데.” 먹고사는 게 팍팍해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 이들은 자주 열등감이 폭발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놓고 저주를 퍼부을 수는 없는 법. 대신 삼삼오오 점잖게 둘러앉아 “저 언니는 조금만 큰일 생기면 영영 주저앉을 것”이라며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척하는 것이 폭발한 열등감을 추스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금만 큰일이 닥쳐도 못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의 기저에는 평탄한 삶에 대한 평가 절하와 인생의 굽이짐이 있어야만 생을 논할 수 있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다른 말로는 소소한 불행이 있어야 인생의 참맛을 알고, 눈물 찔끔거리는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는 건데 아쉽게도 불행에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 불행은 스스로를 극복할 힘을 품고 있지 않다. “방세 못 내어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송파 모녀. “남은 밥과 김치 좀 달라”던 한 시나리오 작가의 아사. 불행에 잡아먹힌 이들이 말하는 것은 이러하다. 첫째, 불행은 참고 버틴다 하여 감히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며, 둘째, 불행의 축적은 희망이 아닌 좌절로 귀결될 때가 많다.

요약하자면 불행은 불행으로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며 사회는 우리를 현혹시킨다. 불행 권하는 사회는 얼핏 유혹적이다. 지금 이 순간을 참고 견디면 더욱 단단해진 내가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는 희망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나 불행 권하는 사회는 세상 모든 유혹적인 것들이 그러하듯 위험하다.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불행마저 개인의 인내심에 떠맡기는 꼴이자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선뜻 손 내밀지 않는 변명일 뿐. 그런 의미에서 최근 연이어 터진 군대 내 가혹행위에 대한 방관, 폭력에 대한 무감각,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거리로 나온 작은 목소리를 바삐 스쳐가는 매정함은 결이 같다. 불행에 대한 무한 긍정이 공감력을 마비시켰다는 점에서 눈물 젖은 빵을 들고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일 이유는 없다.

이유심 서울 중구 필동 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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