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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흑인예수 남미교황 / 하훈

등록 2014-08-27 18:48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재림한 예수가 중세 종교재판 심문관 앞에 불려온다. 심문관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소녀를 살리는 등 기적을 일삼다 체포된 예수에게 왜 하필 지금 나타나 우리를 방해하느냐며 몰아붙인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예수는 그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선 조용히 사라진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장면이다.

미국에서 흑인예수를 소재로 하는 티브이 드라마 방영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예수가 흑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 그가 빈민가 골목을 배회하면서 숱한 문제를 일으키는 삼류 건달로 묘사되어 있으니 백인 주류사회의 반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다. 흑인예수는 할렘의 건달(제자)들과 어울리며 툭하면 욕설을 내뱉거나 주먹질을 하고 심지어 마리화나도 직접 재배해 피운다. 그가 일으키는 기적이라고 해봐야 맹물을 와인보다 도수가 높은 코냑으로 제조하는 기술이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쯤 되면 성인이 아니라 뒷골목에서 밀주를 주업으로 하는 삼류 조폭 수준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기독교가 주류인 사회에서 파격의 예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코믹물을 제작·방영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드라마에 그려진 그분의 모습이 딱히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피부색은 몰라도 드라마의 예수는 진짜 그분의 삶과도 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그는 마구간에서 태어날 정도로 출신 성분이 비천했고 평생을 농부와 어부 등 육체노동자, 창녀와 이민족 등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지 않았던가? 그가 으리으리한 성전에서 부자나 힘 있는 자들 앞에서 설교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1970~8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록 가스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떠올랐다. 예수를 인간으로 육화한 이 뮤지컬 공연도 미국 보수 기독교주의자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제자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우유부단하기만 한 성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 막달라 마리아 등 파격적으로 설정된 인물들이 낯설었을 것이다. 로마 식민지배하의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함께 분노하는 인간 예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신성의 육화는 어떤 종교에든 금기니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불교 신자인 나를 비롯하여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그 뮤지컬을 통해서 예수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 흠모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과 헌신이라는 그분 가르침의 본질을 훼손하지만 않는다면야 유쾌한 풍자나 감성적 인물 해석은 선교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권장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기대해본다. 예수뿐 아니라 싯다르타 등 다른 성자들도 신성의 권좌에서 내려와 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방랑하며 진솔한 우리 이웃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모습들을 자주 뵐 수 있기를. 한반도 분단의 면류관을 쓰고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도 보았으면. 그래서 천국과 깨달음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도’ 있음을 손수 보여주신다면!

오늘날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하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가 황인이 아니라 흑인이면 어떻고 백인이면 어떤가? 최근 방한해 높은 권좌에서 내려와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교황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의 드라마였다. 고통을 넘어 밤낮을 통곡으로 지새우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시종일관 함께한 남미 출신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랑은 오늘날 길 잃고 방황하는 우리 종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훈 평화기획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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