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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가리왕산의 피울음소리 / 정용철

등록 2014-09-01 18:48


가리왕산이 울고 있다. 피울음이다. 씨앗이 뿌려져 자라는 데 100년을 기다린 고목들이 단 5분 만에 베어져 나동그라졌다. 평창겨울올림픽에 쓰일 활강장을 지어야 한단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환경단체들을 통해 그동안 꾸준히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조차 환경파괴가 우려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활강장의 국제규격을 조정할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그럼에도 밀어붙였다. 개발할 때 다 해버려야 한다는 무데뽀 정신으로 무장한 자본의 거대한 힘이 그 뒤에 있음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그리고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수를 둬가면서 가리왕산을 피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베어져 죽어갈 때 피를 흘린다. 마당의 풀 몇포기를 잘라도 비릿한 냄새가 난다. 누군가 그 냄새를 풀피냄새라고 불렀다. 베어진 아픔을 머금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풀 한포기가 잘려도 피를 흘리면서 아파하는데 하물며 100년의 시간을 견뎌온 고목들이 베어질 때 들릴 울음소리라니. 거대한 피울음소리다.

오래전 미국에 이민 와 살아가는 재미동포 아이들에게 주말에 한국학교를 운영하면서 붓글씨 선생 노릇을 한 적이 있다. 붓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붓에 이름을 지어주고 한 학기 동안 쓰다듬고 아끼면서 붓과 사귀어 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여기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붓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극진해졌다. 매일 흐르는 물로 씻고 보다듬으면서 붓과의 돈독한 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학기 말에 한 아이가 붓글씨 연습을 마치고 붓을 씻다가 목이 똑 부러졌다. 어린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교실은 숙연해졌다. 붓의 아픔을, 그리고 붓을 잃은 아이의 아픔을 한순간에 모두가 통감하고 있었다.

한의학에서 마비를 일컬어 불인이라 한다.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함께 사는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고 손가락이 잘리면 아프듯 타인의 고통에 아픔을 느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다른 생명의 아픔에 마비가 되어 버렸다. 불인이다.

가리왕산에서 벌어진 이 무시무시한 불인의 한가운데에 자본의 탐욕에 마비된 우리들의 마음이 있다. 100년의 기다림과 5분의 베어짐. 이 절망적인 비대칭성 앞에 우리는 마취에서 벗어나 함께 울어야 한다. 그리고 단단히 연대하고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빼앗긴 숲을 위해, 강탈당한 삶을 위해, 그리고 뭉개진 사람의 땅을 위해.

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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