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불안은 나를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시험 전날의 불안감은 더 늦은 시간까지 나를 깨어 있게 했다. 그 터널만 끝나면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불안은 고통이면서 또한 황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결코 이 터널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될 때, 그 불안은 ‘절망’으로 귀결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불안의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대다수는 노력의 값이 매겨지지 않는 ‘불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교육사다리는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노인들은 어두운 새벽, 파지를 줍기 위해 차가운 밤거리를 헤매고 있다. 노력해도 전세난민에서 벗어날 수 없고, 노력해도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으며, 노력해도 파지 줍는 ‘불면의 새벽’을 벗어날 수 없다. ‘불안의 절망’ 속에서 그들은 ‘죽음’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했다. 지난해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에서 최근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까지. 극단적 불안의 끝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한겨레> 새해 여론조사 결과.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가’에 대한 질문에 47.3%는 ‘빈부격차가 적고 사회보장이 잘돼 있는 사회’, 28%는 ‘힘없는 사람들도 평등하게 보호받는 사회’라고 응답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바로 세워야 할 두 기둥을 의미한다. 여기서 ‘평등한 보장’은 당신과 내가 똑같이 절반은 나눠 갖는 평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애초 시작이 8 대 2였을지라도 노력으로 6 대 4로 반전이 가능한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우리는 노력의 도구가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경제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 잘못된 ‘교육’ ‘노동’ ‘경제’를 바로 세워 노력의 값어치가 제대로 매겨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근저에는 그들을 보호할 사회안전망의 존재가 절실하다. 부유한 이들은 굳이 안전망이 없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양질의 의료, 양질의 교육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모녀에게 안전망은 삶의 ‘목숨줄’이었다.
불안은 황홀이어야 한다. 불안은 정해지지 않은 미래로 나아가는 노력의 시간이어야 하며, 그 끝엔 빛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의 ‘희망’이어야 한다. 우리는 노력의 값어치가 정당하게 보장받는 사회를 원한다. 그래야 ‘나’는 살고 ‘당신’은 죽는 절망의 사회를 종식시킬 수 있다. 그래야 다시, 함께, 살아낼 수 있다.
문정빈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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