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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교육정책은 과연 실패했는가?

등록 2006-01-09 21:53수정 2006-01-13 19:16

왜냐면 반론 - 조상희 교수의 ‘정책실패와 엎지른 물 쓸어담기’를 읽고
평가의 주도권이 학교 외부에 있는 수능 성적보다는 학교와 교사에게 있는 학생부 성적이 강조될수록 사교육의 유인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조상희 교수는 수시 1학기 모집 제도, 학생부를 강조하는 2008 대입제도 개선, 이른바 ‘3불 원칙’을 ‘정책실패’의 사례로 들면서 정부로 하여금 이러한 정책실패를 관성에 따라 유지하려 들지 말고 개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든 사례가 진정 실패한 정책이며, 정부는 그럼에도 이를 관성적으로 유지하고만 있는가? 한 가지씩 살펴보자.

첫째, 수시 1학기 모집 제도는 개인의 적성과 특기를 고려하여 대학별로 더욱 특성화된 전형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수시 1학기 모집은 매년 8월 내에 완료되기 때문에 11월에 시행하는 수능시험 성적은 최저학력 기준으로도 반영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최근 7개 대학이 수시 1학기 모집을 폐지하기로 한 것에 대하여 ‘수시 1학기 합격생 가운데 수능시험 최저학력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탈락한 학생의 비율이 50% 가까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본다’는 주장은 수시 1학기 모집 제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잘못된 것이다.

이에 덧붙여 수시 1학기 모집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부정입학 사례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으나, 이것은 공공의 안녕과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범죄의 문제로서 그야말로 검찰과 사법부가 나서야 할 문제이다. 또한 재작년에 논란이 된 고교등급제의 경우에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행정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그에 대한 제재 역시 정부의 재정지원을 일부 제한하는 것으로 그쳤다.

둘째, 200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대입제도는 학생부의 신뢰성을 제고하여 대입전형에서 반영비중이 확대되도록 유도하고, 수능시험 성적을 등급으로만 제공하여 과도한 점수경쟁을 완화하고 대입전형에서의 의존을 낮춤으로써 궁극적으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사교육의 증가, 교육현장에서의 경쟁 심화를 논거로 이러한 새로운 대입제도를 ‘실패한 정책’의 사례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대입 전형에서 학생부 성적과 수능 성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때 사교육 의존도가 완화되겠는가? 각각의 평가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고려하면 답은 자명하다. 평가의 주도권이 학교 외부에 있는 수능 성적보다는 평가의 주도권이 학교와 교사에게 있는 학생부 성적이 강조될수록 사교육의 유인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제도 시행 초기 일부에서 관성적으로 발생한 사교육 의존 현상만으로 새로운 대입제도가 실패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이다.

또 예체능 과목까지 과외가 성행하는 것이 새 제도의 부작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학생부 성적은 총점 없이 과목별 성적만 산출되고, 대학과 모집단위의 특성에 따라 반영하는 과목이 다르다. 실제 예체능 분야 모집단위를 제외하고 예체능 과목의 학생부 성적을 요구하는 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학을 원하는 모집단위와 무관하게 예체능 과외까지 받는 학생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정말 구체적인 사례에 근거한 주장인지 묻고 싶다.

셋째, 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본고사 금지는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어느 정도 국민적 합의를 거쳐 유지되어 온 정책이다. 기여입학제를 제외하고, 본고사가 허용되던 시기에 발생했던 고액과외 등 많은 부작용들은 자녀수가 급감한 오늘날에는 더욱 가중될 우려가 크다.

또한 2008학년도 새로운 대입제도가 처음 적용되는 현재 고1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생부 교과성적의 기재방식이 변경되어 이른바 ‘성적 부풀리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부 성적을 믿을 수 없다는 대학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이 모두 합리적이고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한때 성공적이었던 정책이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 정책에 대하여 언론과 국민 일반으로부터의 질책과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이를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책과 비판은 우선 정확한 사실과 이해에 근거해야 한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은 오히려 일반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하고 정부에 대한 맹목적 불신만 양산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김화진/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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