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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공정거래법 개정, 더는 미루기 어렵다 / 신영수

등록 2020-11-25 18:50수정 2020-11-26 02:37

기업활동을 억제한다는 오해 넘어

신영수 ㅣ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0대 국회부터 추진되어온 공정거래법 개정이 강한 반발에 부딪혀 여전히 답보 상태다. 대기업집단에 대한 규제 강화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기업활동이 더욱 위축될 거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이런 구도 속에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마련해놓은 여러 개정안들마저 발목이 잡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집단 규제는 늘 편차 큰 시각의 차이를 드러내온 사안이었다. 경제 문제이자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에 맞물려 거론되는 주장에는 현실을 외면한 편견들이 적지 않아 보여 아쉽다. 재계에서 가장 반발하는 지주회사와 사익편취 규제만 해도 그렇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새로 편입되는 지주회사에 대해 자회사 지분율을 현재보다 10%포인트씩 높이도록 했다. 재계는 지주회사에 우호적이었던 정부가 갑자기 기조를 바꾼 바람에 지주회사 설립이나 전환이 어려워지고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반발한다.

정부는 그간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왔던 게 사실이다. 규제도 완화하고 세금도 감면해주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지주회사와 자회사 수는 급증했고, 자회사로부터 총수 지분이 높은 지주회사 쪽으로 부가 흘러갔을 것으로 의심되는 편법적 징후들도 나타났다.

본래 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으로 유지되는 회사이지만 상당수 지주회사들의 수익구조에서 브랜드 사용료나 컨설팅수수료 등 배당 외 수익의 비중이 더 높게 형성되어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적은 지분으로 자회사를 둘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이번 개정안이 기존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거나 수익원을 지정해준 것도 아니다. 새로 설립되거나 편입되는 지주회사에 대해서만 자회사 지분을 10%포인트 더 높인 것이다. 이 같은 한국 특유의 지주회사 관행이나 나름 현실을 감안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사익편취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개정안에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20% 이상인 상장회사, 그리고 그 회사가 50% 초과의 지분을 가진 자회사가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되었다. 경영활동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며 기업활동 전반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개정안 어디에도 총수일가에 소유회사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없다. 현재의 지분을 유지하더라도 일감 몰아주기나 사익편취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법 개정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은, 지분을 줄여서라도 총수일가 소유 회사와의 거래를 지속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우리처럼 기업의 지배구조나 내부거래를 정부가 일일이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한다. 실상의 절반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외국 기업집단에서는 내부거래나 사익편취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와 달리 이사회, 감사 등 회사 내부의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데다, 만일 소수 주주나 기업에 손해를 끼치면 주주들로부터 이내 소송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나 압박감의 총량은 어느 나라든 큰 차이가 없다. 과연 공정거래법이 없이도 투명한 지배구조와 공정한 거래의 길이 선택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기업활동의 억제에 있지 않다. 기업들로 하여금 총수로 인한 부담과 리스크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데에 맞춰져 있다. 회사 제도는 소유한 만큼 지배하고 지배한 만큼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소유하지 않았는데 지배하고 지배했으면서 책임지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면 공정거래법을 통해서나마 불투명과 왜곡을 시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기업의 성과 못지않게 부의 형성 과정에 주목하는 대다수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다시 떠올려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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