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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인구절벽시대, 현대판 ‘빈공과’를 상상하자 / 이재영

등록 2021-04-28 19:07수정 2021-04-29 02:37

이재영ㅣ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의 가장 큰 재난일까? 전세계가 고통을 겪는 이 와중에 무책임하고 뚱딴지같은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절벽이라는 재난에 비하면 코로나 팬데믹은 오히려 심각성이 덜하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국가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사회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고 상처도 아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코앞에 다가온 인구절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악화되고, 공동체의 소멸이라는 절망적인 미래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인구절벽이라는 재난은 현실이 된 순간에도 자각증세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에 출생보다 사망이 많아서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일어났지만, 현실에서 이 때문에 자기 삶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인구절벽을 먼저 실감하는 곳은 교육 현장, 특히 대학이다. 올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대학들까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조만간 상당수 대학의 폐교가 예고되고 있다. 대학이 문을 닫는 것은 그 지역 경제의 붕괴와 지역 사회의 와해를 의미한다. 또한 대학이 지역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학의 폐쇄는 지역 문화의 단절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술과 교육의 지역 기층 구조가 무너져서 지방이 황폐해지면, 사실상 섬처럼 고립된 서울 수도권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인재 양성 시스템 전체가 붕괴된다.

인구절벽에 대해 정부가 팔짱 끼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 15년 동안 2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해결의 기미는커녕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안정적인 취업과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 따기라서 생존을 위해 결혼,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떤 유인책을 쓰더라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은 역설적이게도 각 개인의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최악의 결과다. 게다가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제대로 지켜주고 잘 성장시키지 못하면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변변한 자원이 나지 않는 우리나라를 오늘날처럼 발전시킨 가장 중요한 자산이 인적 자원인데, 이 인적 자원을 늘리는 일이 더 이상 쉽지 않다면, 이미 있는 자원을 더욱 귀중하게 여기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인적 자원을 제일 흔하게 여기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인적 자원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자원이라면 내부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번영을 누린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고 널리 인재를 구했다는 것이다. 대제국을 건설한 당나라는 문호를 넓혀 주변국의 인재들까지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신라의 인재 최치원은 18살에 당나라가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과거인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여, 29살에 신라로 돌아올 때까지 당나라를 위해 봉사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힘은 해외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인재들에게서 나온다. 미국 정부는 영주권이나 시민권 부여 제도를 활용하여 해외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대학은 장학금 제도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첨단 기술 인력을 유치한다. 나사(NASA)나 실리콘밸리는 외국에서 유입된 고급 두뇌들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발상을 전환하여 해외 고급 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노력을 할 때가 되었다. 마침 한류와 케이(K)방역 등 달라진 한국의 위상 때문에 해외 고급 인재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정착하는 데 호감을 느낄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때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할 현대판 ‘빈공과’를 진지하게 상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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