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청년, 느슨하게 바라보기 / 복건우

등록 2021-05-05 18:31수정 2021-05-06 02:36

복건우ㅣ연세대 행정학과 3학년

서울 후암동의 한 요리주점을 즐겨 찾는 편이다. 늘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서른살 남짓의 청년들은 우리가 식사하는 내내 눈을 맞추고 피드백을 받는다. 식사를 마치면 입구까지 배웅을 나온 뒤 깍듯한 인사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장마에 스미는 축축함이 땀방울을 다 말리기도 전에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는 그들의 루틴을 바라보며 나는 동행인과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다. “건실한 청년들이야.” “청년 창업의 성공 케이스지?” 이제 와서 그때를 회상하는 건 다름 아닌 청년 담론의 본체를 생각하면서다. 성실과 열심, 극진한 태도라는 가치들을 청년 성공의 척도 중 하나로 여긴 무의식이 내 개인적인 파편에만 그치진 않을 것이다.

청년을 둘러싼 시선이 너무 단조롭다. 열심히 달리거나, 고꾸라지거나. 성실히 가게를 운영해 구슬땀을 흘리거나,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며 곤경에 빠지거나. 긍정과 부정 사이를 메우는 회색 지대가 턱없이 부족하다. 양극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이 청년은 수동적인 존재로 왜곡된다. 청년의 실체가 사라진다.

우리 사회가 청년을 긍정하는 방식은 앞서 말한 ‘열심’을 전제한다. 청년은 주어진 과업을 열심히 수행한다. 성과를 내고 새로운 경쟁을 마주해야 하는 루틴이 청년이라는 표상을 관통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노동의 대가와 효율의 성과를 보상하는 오늘날을 성과사회로 규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에서 긍정성이 야기하는 폭력에 있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라는 지적을 곱씹어보면 청년을 마냥 긍정할 수 없다. 성과를 달성한 이들은 강박 내지는 완벽주의를 함께 익힌다. 열심과 성실을 떠먹을수록 우울과 불안이 그 밑에 도사리는 구조다. 10대부터 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긍정성의 과잉은 지금도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중이다.

청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건 다를까. 긍정성이 넘치면서 내면을 갉아먹는 와중에, 부정성이 깃든 자리 또한 취약한 건 매한가지다. 노동과 과업의 성과가 미진한 청년들은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시험과 평가라는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한 청년들은 능력이, 노력이 부족하다는 멸시를 받는다. 지나친 능력주의와 성과주의가 바로 여기, 부정적인 묘사 위에서 움튼다. 능력·성과주의라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굴욕과 좌절로 쉽게 소급해버리는 시선이야말로 게으르고 안일하다. <능력주의와 불평등>에서 이경숙 강사(교육학자)는 “학교 중퇴나 가출할 때 그리고 사고와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그곳에 사람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를 헤아린다. 청년의 존재를 능력이나 노력 따위로 부정하는 건 훨씬 많은 존재들을 지운다. 납작하게 그려지는 청년은 긍정에서도, 부정에서도 살아남기 힘들다.

청년을 납작하게 소비하지 말자. 경험과 맥락이 일생에 걸쳐 다양하게 퍼져 있듯이, 청년이라는 존재 또한 다양한 욕망을 가진 보통의 존재로 동등화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청년은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존재다. 우리는 과업에 치열하게 매달리는 청년을 떠올리는 동시에, 열심과 심심의 복판에 있는 청년을 상상할 수 있다. 좌절하거나 체념하기에 앞서 분노하거나 가히 변혁적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스펙트럼을 연결해 사회를 움직이는 추동력으로 받아들이는 게 청년 담론의 최우선 과제다. 몇가지 군상 안에서 빠듯하고 단조로운 청년 대신, 느슨하고 다양한 청년의 상(像)을 마음껏 기대하고 싶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