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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자그레브 시민의 선택 ‘녹색 좌파’

등록 2021-07-15 13:23수정 2021-07-16 02:35

그래도 진보정치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올해 5월 시장선거가 있었다. 대한민국 언론 외신면에 실리기에는 상대적으로 낯선 나라인데다 지방선거였기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이 선거에 주목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 결과가 자못 흥미롭기 때문이다. 자그레브 시민들은 1982년생인 신진 좌파 후보 토미슬라브 토마셰비치를 새 시장으로 선택했다.

현실사회주의를 경험한 나라에서 좌파가 수도의 시장으로 당선됐다니, 우선 그 점이 놀랍다. 물론 동유럽 여러 나라에도 그간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 세력들이 있었고, 여러 차례 집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당 독재 시절의 집권당을 이어받은 이 흐름은 사멸하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었다. 이들이 퇴장하며 남긴 공백은 주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연계를 맺은 사회민주당들이 채웠다.

그런데 토마셰비치는 좌파이긴 하되 스탈린주의의 잔재도 아니고 사회민주당 소속도 아니다. 그는 불과 4년 전에 결성된 지역정당 ‘자그레브는 우리 모두의 것’(ZjN) 소속이다. 10대 시절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해온 토마셰비치는 자그레브의 노동운동, 여성운동, 소수자운동 세력과 함께 이 당을 창당했다. 이 지역정당은 2019년에 유럽의회 선거에 대응하고자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이름의 전국 조직을 따로 만들었고, 이 조직은 다시 ‘신좌파’ ‘크로아티아 지속가능발전’ 같은 정당들과 힘을 합쳐 ‘녹색좌파연합’이라는 정당연합을 결성했다.

지역정당은 아예 존재할 수도 없고 양당 정치가 지배하는 한국 상황에 견주면, 너무 복잡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토마셰비치와 그 정치 세력이 새로운 세대의 다양한 사회운동들에 뿌리를 둔 참신한 도전자라는 점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념은 민주적 생태적 사회주의이며, 핵심 전국 정책은 크로아티아판 그린뉴딜이다. 토마셰비치를 비롯한 자그레브 세력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탈성장 비전을 강조하며,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의 집권당인 ‘우리 모두의 바르셀로나’처럼 시민들의 코먼스를 늘려가는 방향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려 한다.

올해 지방선거는 이들에게 중대한 기회이자 어려운 시험이었다. 선거가 있기 석달 전에 자그레브의 만년 시장 밀란 반디치가 돌연 사망했다. 스무해 가까이 시장을 지내며 자그레브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든 반디치가 사라지자 대다수 시민이 변화를 열망했다. 한데 급격한 변화를 약속한 것이 신진 좌파만은 아니었다. 극우 포퓰리즘의 화신인 조국운동당의 미로슬라브 슈코로도 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다.

거의 파시즘에 가까운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는 요즘 동유럽 상황을 보면, 슈코로가 승리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무려 45% 넘게 득표한 토마셰비치는 결선투표에서 약 64%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극우 바람을 제압했다. 더불어 녹색좌파연합은 총 47석의 시의회에서 과반에 불과 1석 모자라는 23석을 차지했다.

참으로 통쾌한 승리였지만, 새 자그레브 시 정부의 앞날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복지와 관련된 공공부문을 늘리고 코먼스를 확대하며 에너지 체제를 혁신하는 것도 급하지만, 그 전에 반디치가 남긴 뿌리 깊은 부패부터 디지털 기술과 직접 민주주의를 융합한 처방으로 손봐야 한다. 일단 새 시장의 첫 행보가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자그레브 프라이드 집회 참석이었다니, 이런 마음가짐으로 현실의 난맥상을 돌파하길 기대해봐야겠다.

아무튼 자그레브 시민들의 이번 선택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곳에서도 예외 없이 기만과 혐오의 정치가 대두했고, 이들을 상대할 유일한 호적수는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소수자운동 등의 연대에서 출발한 세력, 녹색이면서 좌파인 신진 세력뿐이었다. 이 구도는 21세기에 세계 곳곳에서 반복될 것이며,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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