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스지(ESG) 경영이 유행이다. 환경(Environment), 사회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이에스지는 기업이 이해관계자와의 중요 이슈에 대한 재무 외적인 평가지표를 스스로 개발해 실천하는 자율규제 성격이 강하다. 공영방송과 인허가 등 공적 규제 틀 중심의 우리 미디어 생태계는 제도적 규범 안에서 소극적 책임을 다하면 문제없으니 관심 밖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이 변하지 않을까. 현재 방송 관련 제도로는 복잡한 미디어 현상을 반영해 규제하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새로운 미디어 형식과 주체가 빠르게 등장하기 때문에 규제보다는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광고주와 투자자, 소비자도 윤리적 책임과 공정 거래를 약속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미디어를 선택해야 이용에 따르는 각종 피로와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미디어 업계의 이에스지는 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2년째 이에스지 보고서를 발간한 넷플릭스는 독특한 평가 지표를 개발했다. 1시간 영상을 시청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화질별, 기기별로 측정해 탄소발자국의 양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도 에너지·탄소 절감을 위한 제작 지침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구성원의 성별과 인종의 다원화, 제작진과 출연진의 다양화, 정보 프라이버시(개인식별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사회책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올해 이에스지 보고서를 나란히 공개한
네이버와
카카오도 환경문제와 사회책임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과 실천, 파트너와의 공정한 거래와 협업, 이용자 보호, 지역공동체와의 협력 등을 담은 이에스지 이슈 평가지표를 발표했다.
이들 이에스지 보고서가 보고를 위한 수사의 나열에 불과한지, 실천 가치가 있는 평가지표인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해당 기업이 투자자, 소비자, 파트너, 정부, 지역사회와의 관계 맺기를 지속가능한 공익적 활동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간 공영방송이 발간해온 정성적인 연례보고서와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한국방송(KBS) 연차보고서’와
‘문화방송(MBC) 2020 연례보고서’를 보자. 방송사 연례보고서는 이해관계자를 선정해 해당 기업이 이들과 어떤 소통과 활동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한 이에스지 보고서와 달리, 프로그램이라는 결과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전세계적 주요 의제인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실천이나, 결과물의 이해관계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이들과 어떠한 공정 거래의 절차를 통해 만들었는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시청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내용은 일부 있었지만 창작자와 제작자 등 주요 파트너와의 공정 거래와 계약, 동반성장에 대한 내용은 전무했다. 우리 공영방송의 주요 파트너는 누구인가? 이들은 모든 파트너와 매뉴얼에 근거한 공정 거래를 하고 있는가? 창작자와 갑을 관계의 일방 계약으로 대우하는 관행을 고수하지는 않는가?
이에스지는 이해관계자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들을 포용적으로 평가하는 작은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해관계자들과 대등한 관계 속에서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정한 자율규제를 도입하는 방송사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최선영 ㅣ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