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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선,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등록 2021-09-07 18:50수정 2021-09-08 02:32

[세상읽기]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고 야권에서도 후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정치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앞으로 후보와 정당들이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많은 뜨거운 이슈가 터져 나올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선거가 왜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놓지 않아야겠다. 선거의 존재 이유는 그저 더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시민의 삶과 사회 현실을 더 잘 대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작년 총선에서 1, 2당이 전체 의석의 94%를 차지할 만큼 양당 체제가 강해져서 거기서 무시되는 의제를 살려내기가 어렵다. 대선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여론조사 보도만 보다가 될 만한 후보를 찍어주는 게 전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시민들이 그런 관객의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 주인공으로 올라온다면 이 선거는 훨씬 더 흥미로워질지 모른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최근 한국 시민사회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민들의 사회참여가 확대됐고, 새로운 세대의 사회운동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불만스러운 정치 현실을 앞에 놓고 시민사회가 무력하다고 느끼고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에 큰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다.

 우선 2000년대 내내 진행되어온 장기적 추이가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양적으로 팽창하고 일상 속으로 깊어졌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와 정당들의 역량도 함께 커졌기 때문에 전체 사회 내에 시민사회의 상대적 위상은 민주화 직후와 같지 않다. 1990년대만 해도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책·제도·문화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공 부문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 캠프와 정당들이 만드는 현황 보고서와 정책 대안을 능가할 콘텐츠를 시민사회가 제시하려면 긴장감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정치가 시민사회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강해졌다. 정부, 지자체, 정당이 시민사회의 맨파워, 의제, 담론, 정책 대안을 유입하여 제도정치의 맥락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한 정치의 긍정적 변화도 많지만 부정적 결과도 적지 않다. 정치가 시민사회의 창작품을 가져다 영혼을 빼내고 빈껍데기만 남기는 일이 허다하다. 시민사회가 개척해온 훌륭한 의제들이 관료·기업의 비토와 정치적 고려 등 온갖 ‘현실적’ 이유로 누더기가 되고, 그 결과로 시민사회 세력까지 사회적 신뢰를 잃곤 한다.

 시민사회의 내적 요인도 크다. 1990년대에 결성된 전국적 범위의 대형 시민단체들은 전문화된 인력을 집중시켰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정당·언론·학계의 동맹자와 긴밀히 교류했다. 그와 달리 2000년대에 새로이 발전된 시민사회는 수적으로 많지만 소규모로 지역 범위에서 활동하며, 재정적으로 영세하고, 단일 이슈 중심의 느슨한 모임 성격이 많으며, 도처에 분산되어 있어서 자원의 전략적 집중이 어렵다.

 이상의 조건에서 시민사회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지금 한국 시민사회가 정치를 변화시킬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회참여의 현장에 있는 시민들은 실로 수없이 많고 다양하며, 새로운 세대의 참여자들은 노동, 주거, 페미니즘, 생태 등 여러 이슈를 오가며 광대한 가치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각각의 힘을 어떻게 큰 정치적 목소리로 결집해낼 수 있을 것인가다.

 우선 시민사회단체들이 선거에 좀 더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가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고, 향후 정치의 핵심 의제를 제기하며, 후보들을 압박할 정책 대안을 목록화하는 집단적 작업이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다. 시민사회 지대에 있는 수많은 정책 인력과 활동가들이 대선 시기에 관중석에 있을지, 플레이어로 나설지에 따라 선거의 담론 지형은 달라질 것이다.

 놀라운 변화는 생각지 않은 곳의 어느 작은 실험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든 거대한 물결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어느 행동에서 시작됐다. 노동 권익, 비정규직 보호, 청년의 자유와 생존, 지역 생태계, 장애인 인권, 차별과 폭력에 대한 반대 등 많은 이슈에서 지금 변화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이들이 뉴스를 보며 답답한 가슴을 치는 대신 곳곳에서 무대 위로 뛰어오른다면 선거 정치의 익숙한 문법에 뜻밖의 균열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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