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권의 사적 활용이란 비판에 직면한 정치인 윤석열이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은 없이 ‘정권 교체’만을 외칠 때 그는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국민의힘 핵심 지지자들의 강렬한 욕구에 편승해 진실을 호도하는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찾기 어렵다. ’닥치고 정권교체’로 검찰의 ‘고발 청부’ 의혹을 덮고 정치적 위기를 넘어서려는 것만큼 불순하고 국민에게 위험한 행동은 없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 춘천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정권 교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 춘천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정권 교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520/imgdb/original/2021/0913/20210913502875.jpg)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 춘천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정권 교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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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좀처럼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 이게 윤석열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2016년 <한겨레> 김의겸 기자가 ‘최순실 국정농단’ 특종을 하자, 당시 대전고검에 근무 중이던 윤석열 검사가 일면식도 없는 김 기자(현 국회의원)를 한겨레신문사로 직접 찾아와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 뵙자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했다는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검찰의 ‘고발 청부’ 의혹으로 위기에 몰린 윤 전 총장이 지난 주말 급히 대구를 찾아 쏟아낸 말엔 끓어오르는 심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여당의 저 주장 (고발 청부 )에 올라타는 거는 또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 시작하자마자 벌떼처럼 올라타는 게 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선에서 경쟁한다고 해도, 어떻게 저쪽 (여당 )에서 총을 한 방 쏘니 그냥 난리가 나서 바로 올라타 가지고 그렇게 합니까 . 그래서 정권교체 하겠습니까 . 저는 오직 이 정권의 교체밖엔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사흘 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그렇게 무섭냐. 저 하나 그렇게 제거하면 정권 창출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러나 감정에 솔직한 게 진실을 가리는 무기가 될 수는 없다. ’정권 교체’라는 구호로 사실을 덮고 정치적 위기를 넘어서려는 건, 그가 검찰총장 시절 그렇게 강조했던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올해 1월1일 신년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해보라. 그는 검찰총장 신년사에서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정한 검찰이란 수사 착수부터 형 집행까지 우월적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고 “국민의 검찰이란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정치인 윤석열에게 그 다짐은 깃털보다 더 가벼운 것이 되어 버렸다. 따지고 보면 현직 검찰총장이 제1야당의 1위 대선주자로 떠오른 것도 야당 지지자들의 ’정권 교체’ 열망이 만들어 낸 신기루 같은 현상이다. 한국 정치 여론조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설문 중 하나가 ’정권 교체냐, 정권 재창출이냐’를 묻는 것이다. 미국의 선거 여론조사엔 이런 항목이 없다. 지난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9월3~4일)에선 ’정권 교체’를 선호한 응답이 49.8%, ’정권 재창출’을 선호한 응답은 42.7%로 나타났다. 이걸로만 보면 내년 3월 대선에서 야당 승리가 유력하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여론조사 전문가는 거의 없다. 18대 대선을 두달 앞둔 2012년 10월 국민일보 조사를 보면 ’정권 교체’ 응답이 50.8%로 ’새누리당 재집권’(33.4%)을 훨씬 앞섰지만, 결과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였다. 박근혜 당선을 ’정권 교체’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고, 더 중요하게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이런 분위기를 투표로 연결시킬 만한 비전과 전망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윤석열이 처한 위기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현직 검찰총장 지지율이 갑자기 뛰어오른 건, 그가 야당 지지자들의 ’정권 교체’ 욕구를 실현해줄 수 있으리란 기대 덕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정치인 윤석열은 손쉽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 오로지 ’반문재인’과 ’닥치고 정권교체’의 정서에 올라탄 후보인 탓에, 더 이상 윤석열이란 카드가 가장 효과적인 정권 교체 수단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지지자들은 언제든지 다른 대안을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 비전과 정책을 기대하기도 힘든 마당에 ‘윤석열이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라는 판단인 셈이다. 최근 특히 젊은층에서 홍준표 의원이 급부상하는 건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 이런 회의감이 넘실대고 있다는 징표로 읽힌다. 대통령선거에서 ’정권 교체’의 열망을 폄하할 수는 없다. 이건 어쨌든 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다. 하지만 오직 반대에만 기댄 정치는 지금의 윤석열 전 총장이 보여주듯 위태롭고 허망하다. 10년 전 최강희 프로축구 감독이 ’닥치고 공격’(닥공)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을 때 그 목적은 분명했다. 팬들을 즐겁게 하는 축구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검찰권의 사적 이용이란 비판에 직면한 정치인 윤석열이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정권 교체’만을 외칠 때 그는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국민의힘 핵심 지지자들의 강렬한 욕구에 편승해 진실을 호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의미도 찾기 어렵다. ’닥치고 정권교체’로 검찰의 ‘고발 청부’ 의혹을 덮고 정치적 위기를 넘어서려는 것만큼 불순하고 국민에게 위험한 행동은 없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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