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ㅣ미디어전략실장
두 달 전, 편집국 소속에서 미디어전략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뉴스를 생산하는 일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회사(조직)와 산업(시장)을 분석하는 일로 업무의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언어’부터 고치려 마음먹었습니다. 언어가 바뀌어야 생각의 틀도 온전히 바뀌리라 기대해서였죠. 우리가 지금 어디 서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싶었습니다.
디지털 전환. 언젠가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단어조차 조금씩 달리 다가오기 시작하더군요. 뉴스 생산자의 관점에선 디지털 전환이란 생산(제작) 공정의 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몸에 밴 익숙함과의 결별이기에, 대체로 낯설고 피곤하고 성가시게 느껴졌을 테죠. 하지만 생산자의 언어를 버리고 나니 이제 디지털 전환은 테크놀로지라는 토대 위에 콘텐츠를 올려놓는 건축공사로 다가옵니다. 당연히 토대가 튼튼해야 콘텐츠의 멋과 맛도 온전히 살아나는 법이죠.
무엇보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테크놀로지와 콘텐츠를 묶어주고 이어주는 철근이자 파이프라인, 곧 데이터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데이터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in-dividual) 개체를 여러 ‘조각’(dividuals)으로 잘게 쪼개는 마법을 부립니다. 50대 중반의 남성인 나는 데이터의 마법에 의해 특정 브랜드의 빙과류를 유독 즐기고 겨울엔 방어회에 푹 빠져 지내며, 한달에 예닐곱권의 책을 사고 국제 분야나 경제 분야 기사를 즐겨 보는 다중인격체로 다시 태어납니다.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건축공사가 이뤄지는 ‘지금,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섬이거나 무중력의 실험실이 아니기 때문이죠. 공사 현장이 들어선 땅과 마을을 함께 살피는 일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곳은 ‘경험 경제’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재화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이 경제활동의 본령을 이루며 고객의 경험치가 부가가치의 크기를 좌우하는 또 다른 패러다임의 무대죠.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소비라는 단어는 쓰고 버려지며 남지 않는, 양적 변화(감소)에 방점을 찍습니다. 이와는 달리 경험의 속성은 대상과의 만남이 만족스러웠건 불쾌했건 간에 계속 쌓이는 것입니다. 소비에서 경험으로의 중심 이동은 마치 3차원(D) 프린터의 등장으로 제작 공정의 형태가 절삭형에서 적층형으로 바뀌는 패러다임 전환을 연상시킵니다. 뉴스를 읽는 독자도 콘텐츠 소비자가 아니라 콘텐츠 경험자인 세상인 거죠.
<한겨레>가 지난 5월 첫발을 뗀 후원회원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판매(종이신문 구독)와 광고를 넘어서는 제3의 독자수익모델의 한 갈래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경험 경제라는 큰 틀에서 봐야 후원회원제의 의미도, 방향성도 좀 더 분명하게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원이야말로 자신이 누린 혹은 누리고픈 경험에 뿌리를 둔 가장 적극적 형태의 참여(engagement)이기 때문이죠.
생각이 이쯤에 이르다 보니, <한겨레>의 갈 길이 아직은 아주 멀다 여겨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얼추 방향은 잡았으되, 이제 겨우 한두 걸음 내디뎠을 뿐이니까요. <한겨레>를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이 냉정한 이유일 테죠. 마음 같아선 말 그대로 재개발이라도 해야겠다 싶으면서도, 실상은 재건축에 최대한 가까운 리모델링에 애쓰는 형편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종말이라고, 독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들 합니다. 레거시 미디어일수록 아우성이 큽니다. 물론 때로는 항의전화/메일로, 때로는 격려전화/메일로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일부 독자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누리집과 앱, 포털 등 <한겨레> 콘텐츠를 담은 다양한 전시장을 오가는 PV(페이지 뷰)와 UV(순방문자 수)란 이름의 더 많은 ‘누군가’가 어떤 속성을 지닌 누구인지 아직은 잘 알지 못합니다. 콘텐츠(생산)에만 주로 매달렸을 뿐, 테크놀로지와 데이터의 세상에 좀 더 일찍 눈뜨지 못한 대가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 합니다. 독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그러기에 요즘 들어 다짐과 목표 삼아 자주 나지막이 혼자 되뇌곤 합니다. “뉴스는 과학입니다.” 당신을 잘 모릅니다, 아직은. 테크놀로지와 데이터의 힘을 빌려 서둘러 당신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땐 멋지게 말을 걸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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