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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산점과 차별점

등록 2006-02-13 18:30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칼럼
지난 8일 연세대학교 법대 대학원은 신입생 선발 때 출신 대학별로 점수를 차별하는 내부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외비로 분류돼 있는 관련 문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로 다음날의 일이다. 그들의 진의 자체를 통째로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 ‘신속한’ 조처가 미덥지는 않다.

그동안 연대 법대 대학원은 신입생 선발시험에서 신촌 교정 졸업생에게는 10점을 더해주고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을 제외한 ‘기타대학’ 출신 지원자에게는 5점을 감점했다. 연대 원주 교정 졸업생도 기타대 출신으로 분류돼 5점이 깎였다. 공무원 채용 때 국가유공자는 10% 정도의 가산점을 받는다. 하지만 국가유공자가 아니라고 해서 감점까지 당하지는 않는다. 소수점 이하의 근소한 점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선발시험에서 한쪽에는 가산점을 주면서 또 한쪽의 점수는 나름의 이유로 깎아 버리면 견뎌낼 장사가 없다. 한발 늦게 출발한 것도 부담스러운데 발목에 모래주머니까지 달아놓는 격이다. 실제로 130점을 받은 기타대 출신 수험생은 5점이 깎여 떨어졌고 120점을 받은 연대 본교생은 10점을 더 받아 합격했다. 이런 불합리한 내부 규정에 대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아서’ 폐지한다는 발표는 법의 정의를 추구한다는 법학자들의 해명치고는 궁색하다. 인종차별 금지 조항을 발표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를 운운하는 행위만큼이나 전근대적이다. 인간에 대한 차별 금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본질적 문제다.

본래 공적 차원에서 가산점은 사회적 덧셈의 의미를 지닌다. 장애인이나 여성, 영세민 무주택자, 국가유공자처럼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할 이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약자를 끌어안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연대 법대 대학원의 가산점 제도는 폐쇄적, 배타적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뺄셈의 도구처럼 보인다. ‘가산점’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명백한 ‘차별점’ 제도다. 기업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여러 가산점 제도를 실시한다. 자격증 보유 여부, 영어 능력, 인턴 경험, 국외유학 및 연수 경험, 공모전 수상 경력 등에 대한 가산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출신 학교, 지방 소재 여부, 병역특례 등 차별을 두는 항목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차별을 두는 항목은 감소하고 가산점을 주는 항목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가산점 제도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중시하는 내적 가치와 지향하는 목표를 그대로 드러내는 중요한 잣대다. 가산점을 운용하는 행태를 살펴보면 그들의 성숙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방에 살고 있는 한 주부가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소도시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야외공연에 참석했다.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몇시간 전부터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 기다렸는데, 공연시간이 임박하자 관계자들이 와서 높은 분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구했단다. 물론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불쾌해하며 아이들이 앉아 있는 앞쪽으로 의자를 한 줄 더 놓아 버렸다. 맨 앞줄이 졸지에 두 번째 줄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높은 분들을 위한 일종의 암묵적 가산점이다. 독자투고란을 통해 그 폭력적인 사태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탄식으로 가득하다.

연대 대학원 본부 쪽은 대학별 등급제와 관련한 내규가 법대말고 다른 과에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정하지 못한 가산점 제도는 구조적 차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차별적 내규가 있다면 폐지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연세대다.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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