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논란을 사과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찬수 | 대기자
윤석열 후보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리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온다. 선거란 게 언제나 요동치게 마련이고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신문·방송이 앞다퉈 보도했던 걸 기억하면, 지금의 출렁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대선을 70여일 앞둔 시점에 맞닥뜨린 윤석열 후보의 위기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는 배경엔, ‘과연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 운영을 잘해낼 수 있겠는가’라는 ‘대통령 자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잘하거나 못하는 범위를 넘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국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참담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으리란 불안감이 윤 후보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국민의힘은 5년 전 탄핵 이전의 새누리당에서 별로 바뀐 게 없다. 지난 6월 전당대회에서 36살의 청년 이준석을 당대표로 선출한 게 변화의 상징인 양 포장됐지만, 그 젊은 당대표는 지금 윤 후보 측근들의 조리돌림 속에 대표직에서 쫓겨날지 모를 처지에 놓였다. “나는 윤석열 후보 지시만 따른다”며 당대표를 치받은 조수진 국회의원의 행동에서, 박근혜 대통령 시절 오로지 ‘박심’을 쫓으며 충성 경쟁을 벌였던 수많은 ‘친박’, ‘진박’ 인사들의 잔영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허위 이력’ 파문에 휩싸인 김건희씨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검사라고 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만 알았습니다. …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은 먹었냐, 따뜻하게 입어라 늘 전화를 잊지 않았습니다”라며 연애편지 읽듯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걸 보노라면, 대체 윤 후보 캠프엔 부인의 기자회견문 하나 제어할 수 있는 참모가 없는 건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렇게 대선 후보의 눈에 들어 권력을 잡으면 한자리 하겠다는 사람들로 가득찬 정당이 집권했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될지는 박근혜 정부가 이미 똑똑히 보여줬다.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과 논문 표절 의혹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며 “죄송하다”는 한마디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비슷한 사안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를 가혹하게 수사하고 사법처리한 게 바로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 후보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정과 정의’의 상징으로 떠오른 윤 후보가 자기 아내의 허물에 대해선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고 무심하게 넘기는 모습에서, 그에게 덧씌워진 가공의 이미지는 현저히 빛이 바랜다. 비록 결혼 전의 일이지만 장모의 사기 및 건강보험 부정수급 사건이 왜 윤 후보가 검사로 재직할 때는 죄가 되지 않다가 그가 검찰을 떠난 뒤에야 사법적 단죄를 받는 건지 국민은 의구심을 갖는다. 국민의힘이 그토록 비난했던 ‘내로남불’의 극치가 바로 윤석열 후보인 것은 아닌가.
대통령 선거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선거다. 설령 아내와 장모의 문제가 있더라도 또는 자식이 속을 썩일지라도 쉽게 판세가 흔들리지 않는다. 윤석열 후보 본인이 지도자로서 능력을 갖췄다면, 그래서 젊은 이준석이 튀고 늙은 김종인이 우왕좌왕하는 낡은 정당을 휘어잡을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지금 이렇게 휘청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의 본질은 윤석열 자신에게 있다. 며칠 전 유튜브에 올라온 <삼프로티브이>의 윤 후보 대담을 보면, 그가 경제 현안을 제대로 고민해본 적은 있는지, 오로지 근거 없는 자신감에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묻는 패널들의 질문에 윤 후보는 “실력 있는 정부는 시장에 개입을 해도 문제가 없지만 실력 없는 정부는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라고 답했다. 자신이 집권하면 검찰 수사를 할 때처럼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뜻인가. 그 실력이 뭔지를 설명해야 국민이 믿고 투표할 텐데, 실력을 보일 생각은 안 하고 “내 실력을 의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데서 검사 특유의 독선과 오만을 엿보게 된다.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에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맡겼다”고 칭찬한 거 같은데, 윤 후보나 주변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런 권한 위임도 위험해 보일 뿐이다.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웃도는데도 오로지 ‘반문재인’을 외치면 정권교체가 되리라 생각하는 단순명쾌함은 그렇다 치자. 탄핵 당한 정당이 다시 집권을 호소하려면, 적어도 ‘이번 대통령후보는 국정을 망치지 않을 자질과 태도를 갖췄다’고 국민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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