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이재명 캠프 동물권위원장인 고민정 의원은 2월14일 페이스북에 ‘반려동물의 지지 선언’을 올렸다. 개 도살 금지, 비건 문화 확산 등을 내건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반려동물이 지지한다는 콘셉트의 게시물이었다. 60명의 개, 고양이 사진 아래 “이재명 후보를 지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컨셉질보다 사람이 먼저”라면서 본인은 “당대표로서 동물에 대한 선거운동은 지시할 계획이 없”다고 조롱했다. 이어서 “동물권의 기본이 동물을 도구로 쓰지 않는 것”이며 공약에 대한 “동물의 의사표시가 있을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동물권에 대해 토론할 생각이 있으면 받아주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동물권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나는 이런 논쟁이 반갑다. 사상 처음으로 유력 대선 후보가 동물권을 내걸고, 비건 문화 확산을 약속했다. 보수당 대표는 동물권의 기본을 운운하며 토론을 제안한다.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 보호나 복지가 아닌 권리가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나는 특히 이준석의 발언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본다. 비아냥대다가 의도치 않게 동물권 담론의 핵심을 짚었다.
우선 “사람이 먼저”라는 말로 당당히 인간중심주의를 선포한 그는 “동물에 대한 선거운동”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동물에 대한 선거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모든 선거운동은 동물에 대한 선거운동이다.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권의 기본은 ‘우리는 모두 동물이다’라는 자각이다. 과학 시간에 누구나 배우는 사실이다. 마치 인간은 동물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고, 인간만이 생명, 자유, 행복 추구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 것이 근대 문명의 오류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인간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특권을 누린다. 먹기 위해 가두고, 착취하고, 학살한다. 동물성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권리의 필요조건을 이성, 즉 말하고 생각하는 능력에서 감성, 즉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능력으로 확장하자는 것이 동물권 주장이다. 우리가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이성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감성적인 동물이라서다. 모든 동물은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좇기 마련인데, 인간 동물의 권리만 보호하는 것은 종차별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기주의를 타파해야 종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동물권 운동은 가장 큰 이타주의를 요한다.
이준석 대표가 틀린 말만 한 것은 아니다. “동물권의 기본이 동물을 도구로 쓰지 않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개, 고양이의 입에 인간의 말을 넣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비인간 동물의 의인화는 도구화나 상품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애초에 공약에 대한 “동물의 의사표시가 있을 수도 없”다는 말은 틀렸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의사표시는 동물의 의사표시다. 자, 여기서 이준석 대표는 21세기 생명 정치의 당면 과제를 밝혀냈다. 우리는 어떻게 동물로서 다른 동물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할 것인가? 인간이 인간만을 대변하는 정치에서 동물이 모든 동물을 대변하는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동물의, 동물에 의한, 동물을 위한 정부가 가능한가?
말이 어색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간단하다. 민주공화국은 소수의 인간이 다수의 인간을 대의한다면 동물공화국은 소수의 동물이 다수의 동물을 대의한다. 민심 대신 동물심을 살핀다. 정치인 스스로 계급, 성별, 지역, 나이 등의 정체성보다 인간성을 우선시할 때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하듯이, 동물성을 전제해야 동물권을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이미 동물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