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냉전 시대를 마주하는 자세가 20세기 냉전 시기의 그것과 똑같을 수는 없다. 세상은 이미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 인식을 보면서 걱정이 드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핵심 동맹인 미국이 중국과 대결하니까 우리도 중국과 대립하고, 미국이 일본을 좋아하니까 일본과 군사동맹까지 나가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식 사고다.
2일 오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예비역 장성 1300여명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예비역 장성이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건 군부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공동취재사진
박찬수 | 대기자
“이제 핵전쟁을 걱정해야 합니까?”
지난달 28일 백악관 행사 도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던진 어느 기자의 질문은 핵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부인했지만, 공식 석상에서 그런 질문이 나온 건 세계가 새로운 대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스러운 상황으로 유럽 대륙을 밀어넣었다. 히틀러의 악몽을 간직한 독일이 국방비를 대폭 늘리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미-중 갈등에 더해서, 반세기 전과 같은 거대한 전선의 그림이 지구본 위에 그려질 수 있을는지 모른다. 중국·러시아 대 미국의 대결, 그리고 핵 포기 대가로 받은 안전보장 각서가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을 더욱 강경하게 이끌며 핵 문제 해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21세기 ‘신냉전 시대’를 마주하는 자세가 20세기 ‘냉전 시대’의 그것과 똑같을 수는 없다. 세상은 이미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 인식을 보면서 걱정이 드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중국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던지고 일본 자위대가 유사시 한반도에 진주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에 집착하는 태도는 철 지난 냉전식 사고의 발로일 뿐이다. 핵심 동맹인 미국이 중국과 대결하니까 우리도 중국과 대립하고, 미국이 일본을 좋아하니까 일본과 군사동맹까지 나가겠다는 발상이 지금 시대에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21세기 동북아 정세를 헤쳐나가겠다는 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그러면서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니, 이런 궤변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1960~70년대 냉전의 시대엔, 그래도 미국의 우산 아래서 조용히 따르는 게 일정 부분 우리 이익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미군의 수렁이던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한 건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했지만, 그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군사적 이득을 얻은 건 사실이다. 소련, 중국, 북한과는 아예 담을 쌓았으니 그들과 교류할 이유도, 필요도 없던 시절이다.
지금은 다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냉전의 막이 내린 이후, 세계는 좌우 진영의 틀을 벗어나 국익과 인류애적 가치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금 한국과 중국의 교역 규모는 한-미,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맹호부대가 베트남에 첫 도착한 1965년 30억달러이던 국내총생산(GDP)은 2021년 1조8천억달러를 넘었고,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북한과 경제 교류가 가능해지면, 노동력과 시장 측면에서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도 반세기 전처럼 한반도의 북쪽과는 담을 쌓고 미국·일본과 3각 동맹만을 외치는 게 가능한가.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중국과 경제적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게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일 수밖에 없다. ‘동맹’이란 위기에 서로를 돕는 것이다.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국 진출을 허용한다면, 중-일 또는 북한-일본 갈등 시에 우리 국군은 일본 편에 서서 싸울 셈인가. 혐중, 혐북 정서에 편승하는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엔 이런 현실적인 고민은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더 걱정스러운 건, 윤 후보가 신냉전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배치가 문제인 건, 배치 자체보다도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기인한 바가 컸다. 2015년 9월 천안문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해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박 대통령은, 얼마 지나지 않아선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고 한-일 ‘위안부’ 합의까지 덜컥 체결했다. 그리고 이듬해엔 미국의 사드 미사일 포대를 전격 배치했으니, 전승절 참석과 사드 배치가 몰고 올 파장을 박 대통령이 제대로 인식하고는 있었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미·일 군사동맹과 사드 수도권 배치를 거침없이 밝히는 윤석열 후보는 그 의미와 파장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지난날의 냉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21세기 신냉전 시대에도 오로지 반공·반북만 외치면 된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몰라보게 성장한 ‘대한민국호’를 지휘해 수많은 빙산을 피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은, 검찰 수사처럼 마구 밀어붙이고 윽박지르는 결기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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