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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검찰의 정치집단화’로 기록될 대선 / 박용현

등록 2022-03-08 15:18수정 2022-03-08 18:47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용현 | 논설위원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여러 면에서 과거에 보지 못했던 선거였다. 차분히 반추해야 할 특이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검찰의 정치집단화’다.

물론 과거 대선에서도 검찰이 보수 정당의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을 허술하게 다룸으로써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행사한 사례가 없지 않다.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자동차부품 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에 대해 검찰은 투표일을 2주 앞두고 “다스가 이 후보 소유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면죄부를 줬다가 이후 사실로 드러나 망신을 샀다. 하지만 과거 대선 국면에서 검찰이 보수 정치세력의 도우미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첫째는 검찰총장이 대선전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그 자체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치명상을 가하는 행위인데도 검찰 내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대원칙을 검찰이 더 이상 조직의 지배 원리로 여기지 않는다는 표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상식에 못 미치는 숱한 언행으로 검찰 자체의 수준을 욕보여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이 모든 게 말해주는 것은 검찰의 집단사고가 법률가다운 원칙적, 합리적 구심을 지키지 못하고 정략적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라도 ‘정치 검사’를 비난하던 염치마저 사라진 시대가 됐다.

둘째는, 우려했던 대로, 윤 후보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가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대선 국면에서는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검찰이 객관적 태도를 취하기만 했더라도 검찰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 후보 본인과 부인 김건희씨를 향해 제기되는 역대급 의혹들에 대해 검찰은 역대급 느림보 수사를 선보였다.

최근 보도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육성 파일을 보면,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당시 대장동 사업에 1천억원대의 불법대출을 알선한 브로커 조아무개씨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박영수 변호사(전 특검)와 윤석열 검사의 친분을 이용해 사건을 없던 걸로 했다는 구체적 진술이 나온다. 또 다른 대장동 민간사업자 남욱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에서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1년 당시 검찰은 조씨의 계좌추적까지 해놓고도 입건조차 하지 않았는데, 조씨는 4년 뒤 재수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윤 후보가 조씨 사건을 덮은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가담 의혹도 마찬가지다. 핵심 피의자들이 모두 구속기소된 뒤 석달이 지나도록 김씨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주가조작에 이용된 김씨 계좌가 추가로 드러났고, 주가조작 시기에 김씨가 자신을 도이치모터스 이사로 소개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들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연 또는 외면을 설명할 길은 ‘정치적 의도’ 말고는 찾기 힘들다.

그에 대한 화답일까. 윤 후보는 검찰의 권력을 유례없이 강화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최측근 검사를 중용해 전 정권 수사를 벌이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윤 후보가 당선될 경우 검찰이 최고 권력기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검찰의 정치집단화라는 이번 대선의 문제적 특징을 보여주는 세번째 장면이다.

이렇게 20대 대선에서 극점에 도달한 검찰의 정치집단화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선 이후 대장동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에 대한 객관적인 재수사가 필요하다. 또 이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보는 조사도 필요하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캠프의 러시아 유착 의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정치적 수사였다는 비판이 일자 대선 이후 독립적 지위의 감찰관이 감찰을 진행해 각각의 수사를 평가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수사기관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극히 경계해야 하고 방지 장치를 마련하는 게 당연하다.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막강한 권력을 위임받은 검찰이 개인적, 조직적 선택에 따라 특정 정치세력과 한 배를 타는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헌법이 규정한 국가질서는 망가지고 공정과 정의의 가치는 전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성찰적 후속 조처가 실현될지 여부 또한 대선 결과에 좌우되리라는 점이다.

대선은 5년마다 시대적 현상을 포착하고 우리 사회의 대처법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민생 위기, 양극화의 심화, 노골화하는 여성 혐오, 구체적 위험으로 다가온 기후위기, 신냉전 세계질서의 징후 등 뚜렷한 시대적 현안들이 유권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선거 무대에 본격 등장한 검찰의 정치집단화가 이대로 고착될 것이냐, 마지막 불꽃으로 퇴장할 것이냐. 이 역시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질문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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