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프리즘] 이정연 | 젠더팀장
‘페미 척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고 단번에 이 웃지 못할 단어가 화제가 됐다. 페미니스트는 한국 사회에서 척결될 것이라는, 그 어떤 희망과 기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손뼉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더 넓게는 이 사회가 더 성평등한 사회로 나가길 희망하는 사람들을 향한 혐오가 20대 대선 내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있기 전부터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에 올라탄 정치인이 있었다. ‘집게손가락 사태’로 대표되는 백래시를 용인하고, 때로는 그 앞에 납작 엎드리기까지 한 기업·정부기관들이 있었다. 백래시 파고가 높아졌다. 그러나 높아진 건 그것만이 아니다. 척결되기는커녕 여성들은 더 결집했다.
요란스럽다. 며칠 전까지 20대 남성에 주목하면서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복사해 붙여넣는 수준의 기사를 써내던 언론은 갑자기 이대녀(20대 여성)를 쉴 새 없이 소환한다. 정치인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젊은 여성 유권자, 2030 여성, 청년 여성들을 언급한다. 어느 정도의 요란스러움은 그러려니 싶다. 당선자의 압승으로 점쳐지던 걸 신승으로 만든 요인에 20대 여성의 표심이 있는 건 분명하니까.
그런데 도를 넘었다. 정치 주체로서 20대 여성이 냉동 인간으로 잠자고 있다가 갑자기 등장한 존재들인 양 군다. “여성 유권자들, 특히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어떤 자신들의 목소리를 한 번도 제대로 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집단 중에 한 유권자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전 윤석열 선거대책본부 산하 여성본부 고문,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0대 여성은 지난 5년 내내 정치적 주체였고, 목소리를 제대로 냈다. <한겨레> 20대 대선 기획보도 ‘나의 선거, 나의 공약’ 성평등 편에 지난 5년간 있었던 젠더 이슈의 ‘장면들’을 정리해 실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불편한 시위’, 양진호 웹하드 카르텔(성착취물 기반 성산업) 공론화, 안희정 1심 무죄 선고 규탄 시위, 디지털 성착취 반대 등 모든 장면에 20대 여성이 있었다. 유권자로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1년도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이하 여성 가운데 15.1%(지상파 3사 출구 예측조사)는 양당 후보가 아닌 기타 후보를 지지했다. 20대 여성들은 이렇게 선거에서도 직접적인 정치적 의사를 밝혀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가운데 여성·소수자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후보가 5명이나 됐다.
대선 뒤 이 요란함과 떠들썩함 가운데서 드는 생각을 20대 여성들에게 물었다. “20대 여성에겐 투표권이 없는 듯이 굴던 게 엊그제네요. 그걸 잊었을 거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선 중 “이렇게나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 줄 몰랐다”고 푸념하던 오아무개(20)씨는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이아무개(24)씨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주목하는 건 반갑죠. 민주당·정의당 입당 러시 같은 새로운 현상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20대 여성이 이제까지 침묵한 것처럼 여기지 말아요”라고 했다. 그는 한 정당의 권리당원이 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했습니다. 질문도 했고요. 듣지 않고, 답하지 않았을 뿐이죠.”
“젠더 갈라치기 한 적 없다”는 윤석열 당선자는 이제라도 20대 여성들이 대선 내내 쏟아낸 이야기를 주워담기를 바란다. 여성·소수자가 당선자에게 건넸던, 읽고 씹어버린 질문에 대한 답도 끈질기게 요구해본다. 대통령 후보가 아닌 당선자가 된 마당에 혐오와 무시를 정치적 도구로 삼는 일은 더는 없길 바라는 마음에 건네는 조언이다.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