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좌절하지 말고 야금야금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자. 자본주의 해체와 대안의 사회를 목표로 분명히 설정하고,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어젠다와 정책, 담론, 개혁책들을 분명하게 제시하자. 담론과 정책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교육하면서 아래로부터 민중층과 시민사회의 조직화를 이루어내자.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탐욕과 이기심을 내면화한 것을 성찰하고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자.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서울역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대 대선은 그리 끝났다. 수구적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을 이겼다. 불평등의 극대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등 6대 위기가 점점 심화하는 상황이기에, 기존의 경제위기에 더하여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쳐지면서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나 경제 붕괴가 점쳐지는 지점이기에 더욱 걱정이 크다. 새로운 정권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반동과 퇴행을 야기할 것이다. 필자는 이 정권이 극단적 신자유주의화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디지털형 파시즘의 형식을 취하리라 예상한다.
기괴한 생김새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삼류 영화다. 괴물의 진정으로 괴물스러움은 늘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우리는 삼류 영화의 관객처럼 윤석열에게 분노하면서 그 뒤에 숨은 극단적 신자유주의의 야욕들을 놓쳤다. 기득권 카르텔의 수구 인사들이 다시 뭉쳤다. 그들이 작성한 공약집은 한마디로 공정과 상식으로 포장한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책 자료집이다. 정부가 전폭적으로 기업을 지원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위해 교육, 의료, 주택 등을 위한 정부 지출을 최소화한단다.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서 문재인 정권에서도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기업 규제를 더 대대적으로 철폐하고 노동은 더욱 유연화한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구호 아래 디지털과 가상현실로 시장을 확대하고 디지털 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길도 열어준다. 노골적으로 감세 정책을 표방하고 기후위기 대응도 기업 친화적으로, 비용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는 모순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지면 관계로 몇가지 예만 들었지만, 이런 정책들은 6대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서민과 노동자의 희생과 침묵을 전제로만 가능하기에 이명박 정권보다 훨씬 더 혹독한 배제와 탄압이 예상된다.
상황은 암울하다. 하지만 어두울수록 별은 맑게 빛난다. 백기완 선생의 생전 말씀대로 길이 없으면 길을 내서 가야 한다. 객관적 조건은 무르익었다. ‘대선 후보가 말해야 할 시대정신’(2월21일치)에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은 첨예해졌고 6대 위기의 극복은 이 체제를 넘어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새로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청년이나 일부 보수층 인사도 기후위기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다수가 동의한다. 문제는 이 객관적 조건과 진보 진영의 주체적 조건 사이의 괴리가 너무도 크다는 점이다. 이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우선 성찰부터 하자. 진보의 득표율은 괴멸 수준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두 후보의 단일화로 위기를 느낀 비판적 지지자들, 20대 여성들, 호남인들의 표가 이재명으로 쏠린 것을 감안하더라도 절망적인 수치다. 진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정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단일화에 실패하였다. 이재명 후보가 탈이념적 실용주의로, 윤석열 후보가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적 공격으로 일관하고 보수 언론들이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이 체제의 모순을 은폐할 때 진보 또한 이에 휘둘리며 노동자와 서민들이 처절하게 감내하고 있는 너무도 극심한 모순들을 어젠다로 설정하지 못하였다. 많은 노동자 민중이 기권한 이유다.
이제 길은 험하더라도 멀리 길게 보자. 선거 때마다 좌절하지 말고 야금야금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자. 자본주의 해체와 대안의 사회를 목표로 분명히 설정하고, 경로들, 곧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어젠다와 정책, 담론, 개혁책들을 분명하게 제시하자. 이 정권에서 배제된 자들이 함께 연대하여 투쟁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담론과 정책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교육하면서 아래로부터 민중층과 시민사회의 조직화를 이루어내자. 이제 정파를 극복하고 투쟁 속에서 녹여 내어 하나의 연대로 신자유주의 체제와 기득권 카르텔, 두 보수 정당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가하자.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탐욕과 이기심을 내면화한 것을 성찰하고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자. 종북 이데올로기, 성장 이데올로기, 세대론 등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대항의 담론을 만들자.
대전환의 시대다. 타협 노선을 걷거나 자본이나 기득권 카르텔, 보수 양당과 야합한 것을 반성하고 체제 전환의 목표를 향하여 ‘한 발 떼기’(백기완)를 할 때만 진보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력감과 진부함에 빠진 노동자와 대중들을 일떠세워, 설혹 일시적으로 패배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승리로 귀결되는 운동을 꾸려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머지않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