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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개리티 원칙’과 한동훈 후보자

등록 2022-05-01 15:04수정 2022-05-02 02:48

1961년 6월 미국 뉴저지의 경찰관들이 지인의 교통위반 범칙금을 면제시켜주는 등 비리가 있다는 의혹이 일어 수사가 진행됐다. 에드워드 개리티 등 수사 선상에 오른 경찰관들에게는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헌법상 권리(자기부죄금지 원칙)가 있는 동시에 진술 거부는 파면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주어졌다. 결국 이들은 진술을 하게 됐고, 이 진술을 근거로 기소됐다. 경찰관들은 재판에서 ‘사실상 진술을 강요받아 헌법상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지만 뉴저지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연방대법원에 상소했다.

1965년 8월 미국 뉴욕에서는 경찰관들이 불법 도박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에 소환된 한 경찰관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도록 요구받았다. 당시 뉴욕의 법은 이런 요구에 따르지 않는 경찰관을 파면에 처하도록 했다. 경찰관은 진술거부권을 포기하지 않아 결국 파면됐다. 그는 파면 취소 소송을 냈으나 뉴욕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 역시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연방대법원은 1967~68년 이들 사건에 대한 연이은 판결을 통해 그동안 경찰관을 비롯한 법 집행관들에게 진술거부권이 사실상 인정되지 않던 관행을 바꿔놓았다. 법 집행관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과 똑같이 헌법상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지만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스스로 비위 의혹을 받을 때 진술거부권 뒤에 숨어서야 되겠냐는 딜레마는 풀리지 않았다. 비위 혐의를 받으면서 이에 대해 당당하게 진술하지도 않는 법 집행관은 신뢰할 수 없으며, 법 집행권을 위임한 시민들은 이런 이들을 공직에서 배제시킬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지적이 여전했다.

연방대법원은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대안적 원칙을 제시했다. 불리한 진술을 해도 형사처벌의 근거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면책 조건을 부여한 뒤 진술을 요구하고, 그래도 진술을 거부하면 파면 등 징계에 처해도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이런 조건 하에 진술을 했는데 진술 내용상 비리 혐의가 인정될 경우에도 파면 등 징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법 집행관에게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그 직책에 걸맞은 정직·청렴을 요구하는 이 원칙은 뉴저지 사건의 경찰관 이름을 따 ‘개리티 원칙’이라고 부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밝히지 않은 것은 헌법상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 집행관이 불이익을 받기는커녕 법무부 장관에까지 오른다면 법 집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도 풀어야 할 딜레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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