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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정년연장, 난 반댈세

등록 2022-05-11 18:54수정 2022-05-12 02:39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전 정부에 이어 새 정부에서도 정년연장 검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전 정부에 이어 새 정부에서도 정년연장 검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은형 | 책지성팀 기자

새 정부가 정년연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 정부에서도 인구감소 대응 정책 일환으로 꾸준히 정년연장 논의의 군불을 피우긴 했지만 이번에는 어째 좀 더 본격적으로 진행될 듯한 모양새다. 만감이 교차한다.

나이 오십이 넘었음에도 노후대책은 일단 눈앞의 빚더미부터 해결하고 수준인 재정 상태를 보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만, 환갑 넘어서까지 출퇴근(마감) 시간에 맞춰 쳇바퀴 위에서 종종거리며 위아래 눈치 보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괴로운 한숨이 나온다.

물론 정년연장은 단순히 일할 기회를 더 주겠다 수준이 아니고 연금개혁 등과 맞물린 복잡한 문제인데다 청년실업과 초고령화, 재계와 노동계의 엇갈리는 입장 등 사회 전체의 뜨거운 감자다. 전문가들의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일개 노동자인 나로서는 ‘더 일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의 실존적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는 비난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배부른 소리 맞다. 사실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빈곤노년은 대부분 정년과는 아무 상관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나를 포함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고 정년연장의 수혜를 볼 수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이다. 하지만 삼시세끼 뜨신 밥으로 배를 채우는 게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어느 시점에 공식적 은퇴, 즉 회사를 떠날까는 단순한 고민만은 아니다.

요즘은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에 조기은퇴를 하는 ‘파이어족’도 생겨나고 있지만 어쩌다 4인가족 생애주기에 엮이게 된 오십대 이상에게 조기퇴직은 비현실적이다. 코인이나 주식으로 돈벼락을 맞은 파이어족이 아닌 이상 생활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데, 돈 먹는 하마로 변신한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청년취업이 점점 더 험난해지는 요즘은 정년연장이 자립 능력 없는 자식 부양의 방편이 될 수도 있을 지경이다.

2016년 법적 정년이 60살로 바뀌었을 때는 잘됐다는 생각 말고는 별다른 감회가 없었다. 쉰 줄에 손주 보던 시절도 아니고 체력으로 보나 경제적 필요로 보나 오십대 은퇴는 너무 빠르다는 데 이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육십대는 뭔가 어감부터 다르지 않나. 많은 노화 관련 서적들을 보면 대략 65살에 즈음해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나이를 기점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는 것, 마음대로 놀기에도 기운이 달리는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새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검토한다고 했던 65살 정년이 되면 “일하다 보니 할머니가 됐네!”라면서 은퇴를 맞이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때 집으로 돌아가도 남은 인생은 평균 잡아 20년이 넘는다. 어쩔 수 없이라도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시점이 60대를 훌쩍 넘긴 나이라면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사십대 중반과 50살의 매일 아침도 이렇게 다른데 말이다.

또 정년을 맞이한다는 건 삶을 간소화하는 작업과도 연결된다. 당장 매일 보던 인간관계들이 사라지고 무엇보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 물론 직장을 그만둔다는 게 경제활동을 전면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인생 2막에는 일정 정도 수입을 만드는 방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장관 후보자들 같은 비상한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웬만한 자유직 노동으로는 월급 통장 반의반도 채우기 힘들다. 따라서 직장 다니면서 하던 습관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돈을 모으기 위해 야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무한 루프의 고리를 끊어내고 소비의 규모를 줄여가야 한다. 이런 삶의 간소화는 비단 가난해지는 과정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의미 없이 유지했던 관계, 누군가에게 보이는 시선을 의식해 행해진 소비 등을 줄이면서 오히려 젊을 때보다 밀도 있는 삶을, 그리고 어쩌면 생전 처음으로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다. 정년연장은 이렇듯 삶의 간소화라는 인생의 중요한 단계를 유예시킨다는 점에서도 마뜩지 않다.

허구한 날 당장이라도 사표를 낼 기세로 회사 욕을 하다가도 “아직 애가 어려서”라는 말로 대화를 급마무리하는 친구들과 나는, 아마도 정년이 연장되면 “애가 아직 한창 돈 들어갈 때라”라는 이유로, 그리고 아마도 더 멀리 도망갔을 국민연금 지급개시일 때문에 꾸역꾸역 다니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결국 그렇게 되겠지만). 무엇보다 친구들과 목표한 퇴직 기념 자메이카 여행에서 레게 머리를 예순 훌쩍 넘겨서 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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