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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복지국가 한국’ 으로 가는 길/김연명

등록 2006-03-20 18:10

김연명 객원논설위원·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연명 객원논설위원·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침햇발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는 두터운 중산층의 존재와 젊은 인구학적 구조라는 두 축을 가정으로 설계되었다. 양호한 소득분배를 동반한 경제성장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단기간에 4대 사회보험의 기본 뼈대를 갖출 수 있었다. 사회보험에서 제외된 저소득층을 기초생활 보장 제도로 보완한 것도 사회보험이 작동할 수 있었던 조건의 하나였다. 노인이나 어린이의 보호는 젊은 인구구조와 가족간의 상호 원조를 통해 해결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가의 복지 서비스 정책이 취약해도 급격한 사회해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일본을 제외하면 비서구권에서 ‘복지국가’라는 호칭이 붙는 나라는 없다. 최근까지 한국의 복지발달을 보면 복지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더 보완된다면 이차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최초의 비서구권 국가가 될 가능성이 허튼 꿈만은 아니다. 아시아에서 급속한 복지팽창을 보이고 있는 대만도 우리보다 뒤처져 있고, 한국보다 수십년 앞서 복지제도를 도입한 중남미 나라들은 고질적인 부의 양극화로 말미암아 복지국가로 진입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국제학계에서 한국의 복지확대 경험을 주목할 만한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사회 구조의 양극화 추세는 복지국가로 가는 데 최대 걸림돌이다. 양극화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크게 늘리거나 고정시켜 사회 안전망 기능을 상당히 약화시킬 것이고, 저소득층 증가로 기초생활 보장 제도의 재정압박을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 대책으로 추가적 복지재정 투입은 피할 수 없다. 핵심은 누구를 지원할지 정확히 가려내어 필요한 사람에게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조세행정의 근본적인 혁신의 필요성이 누누이 지적되어 왔으나 참여정부에서도 혁신적인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 세무조사 같은 깜짝 행사보다 세부담의 공평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세 기반시설 정비에 더 주력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조세국가의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상징되는 인구학적 변화는 복지 서비스의 팽창을 필연화하며, 재정투입 없이 이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역시 문제는 얼마나 비용 효율적인 투자인가 하는 점이다. 복지행정 체계의 효율성은 보건과 복지, 그리고 실업정책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느냐에 있다. 지금처럼 일선기관에서 칸막이 행정구조가 지속되는 한 재정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보건복지 서비스의 절반은 의료비 지출이기 때문에 비용 효율적 의료체계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의료체계의 효율화를 위한 공공의료 강화정책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건강보험 제도의 근본을 위협하는 의료영리 법인과 민영 건강보험을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천하를 호령했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직원들의 천문학적인 의료비 때문에 망해간다는 얘기는 의료 상업화가 가져오는 국가 경쟁력 약화의 상징이다.

조세, 의료 등 기반시설의 재정비 없이는 복지국가로 갈 수 없다. 기존 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쳐 보았자 누더기만 만들 뿐이다. 보건복지 기반시설에 대한 총체적이고 혁신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1980년대 이후 미세조정을 거치고 있지만 어떤 나라도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서구 복지국가의 종말은 정치적 희망사항일 뿐 사실과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 보호를 잘 융합시킨 체제는 복지국가이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구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연명/객원논설위원·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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