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_이익집단 2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정신을 무너뜨리”니 “가차 없이 싸워 달라”며 이권카르텔 문제를 언급했지만, 그중 가장 문제가 큰 이권카르텔은 정작 윤석열 정부 안팎에 서식하는 관피아라고 할 수 있다. 거대 로펌에서 이익집단의 로비스트로 일한 이가 정부 최고위 정책결정자로서 다시 되돌아오는 ‘회전문 인사’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로펌이 전직 법조인뿐만 아니라 퇴직 및 전직 관료, 심지어 정치인 출신까지 상당한 비용을 치르며 채용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이익집단은 민주화 이후 새롭게 부상한 정책 행위자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익집단은 존재감이 없었다. 권위주의 정치체제 아래서 정부나 정권의 요구에 순응해 어용화하거나 기껏해야 자기보호에 급급한 정책결정 과정의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경제가 사회 각 부문을 압도해가면서 이익단체들은 양적, 질적인 변화를 겪었고, 이제는 ‘이익집단사회’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결정 과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됐다. 압력을 받던 단체(pressured group)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단체(pressure group)로 위상이 극적으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이들 이익집단의 행태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학계의 연구도 언론의 감시도 허술하고 미흡하다. 어쩌면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방증일 수 있다.
‘왜 정책을 결정할 때 이익집단의 사익이 앞서고, 공익은 뒷전으로 밀려날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익집단에 주목한다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핵심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포획’이란 단어로 응축해 설명했다. 여기서 포획은 “불법이나 부당거래가 없어도 정책을 소신 있게 관철하지 못하는 다양한 처지나 행위”를 총칭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예컨대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진료 대란을 풀기 위해선 의사 확충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지만, 의사 증원 정책은 17년째 답보상태다. 이런 상황은 정책결정자들이 의사집단에 포획됐기 때문이란 게 그의 논지다. 정부와 국회의 정책결정자들이 의사와 병원, 관련 기업의 사익에 포획돼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정책이 켜켜이 쌓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의 기형적 의료체계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권위주의 체제가 청산된 오늘날 공무원 사회에서 더는 불법적인 지시나 명령이 통용되기 어렵고 국회의원들도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 유권자를 가장 많이 의식하는데, 어떻게 정책결정자가 이익집단에 사로잡히는 일이 벌어질까. 김 교수는 “(대한민국 정책결정 과정에서) 포획은 마치 공기와 같다”면서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자를 포로로 만드는 방법은 은밀한 로비에 의해서도 이뤄지지만,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하다”고 말한다. 정책결정자들이 의지하지 못할 만큼 일상적으로 이익집단과 접촉이 이뤄지며 매 순간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실제 이익집단은 정부 각 부처 행정관료나 정당 및 의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지니고 있다. 그 매개는 사람일 수도 법적 기구일 수도 있다. 전자가 흔히 ‘관피아’라고 불리는 전직 관료들이라면, 후자는 설립 취지와 다르게 기능하고 있는 몇몇 정부위원회 혹은 정책협의란 이름으로 꾸려진 정부와 이익집단 간 논의기구들이다.
정부 부처에서 퇴직한 뒤 관련 기관·기업·단체 등에 재취업한 관피아들은 인맥과 과거 지위를 이용해 재취업한 곳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를 한다. 모피아, 세피아, 법피아, 교피아, 원피아(핵피아) 등 수많은 합성어의 존재가 가리키듯, 관피아들은 인·허가권이나 정책수립과 집행 등과 관련된 모든 부처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세종 관가에서 과장급 젊은 관료들의 대기업 대관 담당으로의 이직 행렬이 화제가 됐고, 국회에서도 보좌관들의 대기업·로펌행이 줄이어 더는 이례적이지 않은 일이 됐다.
지난해 1월과 올해 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가 펴낸 실태보고서를 보면, “대한민국이 팔리고 있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실상은 상상 이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정신을 무너뜨리”니 “가차 없이 싸워 달라”며 이권카르텔 문제를 언급했지만, 그중 가장 문제가 큰 이권카르텔은 정작 윤석열 정부 안팎에 서식하는 관피아라고 할 수 있다. 거대 로펌에서 이익집단의 로비스트로 일한 이가 정부 최고위 정책결정자로서 다시 되돌아오는 ‘회전문 인사’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로펌이 전직 법조인뿐만 아니라 퇴직 및 전직 관료, 심지어 정치인 출신까지 상당한 비용을 치르며 채용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기실 관피아 현상은 퇴직 관료들의 몰염치한 이익추구 행위로만 볼 수 없다. 경실련은 관피아의 본질을 “국가 공권력의 사유화(민영화)”란 말로 요약했다. 관피아 문제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관료가 결정을 미루거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의 ‘포획론’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도 일찍이 제시했다. 규제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1971년 ‘경제규제의 이론’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이른바 포획이론(Capture Theory)을 처음 제시했다. 규제자가 피구제자를 포획하는 것이 아닌, 피규제자가 오히려 규제자를 포획하는 현상을 두고서 ‘규제포획’이라고 지칭했다.
정책과정과 정치에서 포획은 “정책과 규제를 만드는 관료와 정치인이 오히려 고도의 전문 지식과 로비 능력을 바탕으로 조직화한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현상”을 뜻한다. 숱한 이익집단이 합법적으로 로비를 벌이는 미국 정치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로비가 합법적이지 않은 우리 정치와 정책생태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적잖은 영화나 드라마가 이런 실태를 생생히 드러내 보인 바 있다.
물론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기기묘묘하고도 다채로울 테지만 사실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는 뭇 이익집단의 구체적 포획 행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때로는 은밀하고 부당하게, 때로는 합법적으로 정책과정에 영향력을 끼치는 그 행위들을 ‘관피아 담론’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학계와 언론의 무능과 무관심 탓도 클 것이다.
이익집단의 ‘지대추구’ 문제는 단순히 정책 실행의 위임이나 지연에만 있지 않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익집단의 속성상, 공동체 전체의 이익은 뒤로 밀리거나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결국 이들의 행위는 대한민국 시민의 안전과 복리를 침해하는 반공익, 반복지적 정책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관피아와 그 이면에 도사린 이익집단의 지대추구 행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이익집단의 모든 행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다양한 영역에 산재한 이익집단이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행정적인 순기능을 한다. 정책협의 과정에서 의견 교환을 통해 정부는 정책의 수용성과 현실성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사전에 정책을 조율할 기회를 가져 정책 집행의 부작용과 정책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익집단의 과도하고 극대화한 사적 이익 추구이며, 이에 무기력하고 무방비 상태로 ‘포획’되는 정책결정자와 정책결정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이익집단의 이런 역기능적 영향력을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과 국회의 입법 과정이 더 투명하고 시민 참여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특정 이익집단이 장막 뒤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게 조금이라도 어려워질 수 있다.
최근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불거진 의사와 간호사 등 직역 간 대립과 갈등은 61년 넘게 그대로인 의료법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낡은 법과 제도의 공백은 이익집단 간 갈등과 사익추구 행위를 낳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법과 제도의 공백을 살피고 메꾸려는 적극적 행정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사회 정책생태계 및 복지정치에서 이익집단은 이제 하나의 상수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더 나은 복지국가를 위해선,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자를 포획하는 ‘이익집단의 정치’를 적절히 규제할 구체적 대안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힘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와 행정 영역에서 투명성을 증대시켜야 한다. 공익을 중시하며 책임감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이창곤ㅣ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와 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와 복지정치의 혁신 없이는 좋은 복지국가도, 질 높은 민주주의도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책행위자를 탐구하는 이 연재칼럼 집필에 매진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복지의 문법’(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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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창곤의 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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